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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관사찰' 문건에 판사들 충격…"이 정도일 줄이야…참담"

양승태 원장 숙원사업 '상고법원'에 방해되면 '표적'
동료 장애까지 언급 '대응전략'…"법관 길들이기"

(서울=뉴스1) 윤진희 기자 | 2018-01-23 13:09 송고 | 2018-01-23 14:09 최종수정
양승태 전 대법원장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법관 블랙리스트 추가조사위원회(위원장 민중기 서울고법 부장판사)의 조사결과가 22일 발표되면서 법원 안팎으로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 '법관사찰' 의혹에 대한 강한 비판 여론이 일고 있다.  .  

특히 법원행정처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역점 추진 사업이었던 '상고법원' 설치 등에 비판적 의견을 개진한 법관들을 전방위 사찰했던 사실이 드러나 법관 사회는 충격에 휩싸인 모습이다.  
법원행정처 소속 심의관들이 동료 법관의 '가정사'는 물론 '장애'까지 언급하며 비판적 의견을 묵살하거나, 행정처에 유리한 여론조성을 위한 '도구'로 활용하려 했던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 신망 두터운 판사는 '여론 역풍' 우려하며 사찰

추가조사위의 조사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법원행정처가 사찰 대상으로 삼은 법관들은 평소 사법행정과 사법정책 등에 관심을 갖고 활발한 의견을 개진해 온 이들이었다.  
지금까지 법원행정처는 법관들이 특정 정치성향을 갖는 것이 문제라는 입장을 거듭 표명해왔지만 실상은 양 전 대법원장이 추진하는 정책에 비판적 목소리를 내는 법관들을 ‘표적’으로 삼은 셈이다.

특히 특정 현안에 대해 법원 내부 전산망인 코트넷 등에 의견을 개진하고 다른 법관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얻은 법관의 경우 법원행정처의 집중 관리대상이 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대표적인 예가 문건에서 지목된 차모 판사의 경우다. 차 판사는 전국 각급법원 대표 법관 100명으로 꾸려진 법관대표회의가 추가조사를 결의했음에도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인터넷 포털 다음 아고라에 국민 청원글을 게시했던 법관이다.

차 판사가 법원행정처의 표적이 된 1차 원인은 2015년 8월 법원 내부 전산망에 올린 글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법원행정처는 양 전 대법원장의 역점 추진 사업인 ‘상고법원’ 설치를 위한 작업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차 판사는 사실심(1·2심) 충실화와 이를 위해 판사 수를 대폭 증원할 필요가 있다는 글을 게시했다.

당시 법원행정처는 차 판사의 게시글이 양 대법원장이 추진하는 '상고법원' 설치에 방해가 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차 판사에 대한 조사를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 법원행정처는 차 판사의 성격, 스타일, 친소관계, 가정사 등에 이르기까지 전방위 사찰로 볼 수 있는 '대응전략'을 마련했다.

해당 문건에서 법원행정처는 차 판사가 사시 준비 기간 중 시각장애인 친구의 사시합격을 도왔던 내용과 이라크 전쟁 반대운동에 참여했던 사실 등을 바탕으로 차 판사의 의견개진에 섣부른 개입을 자제해야 한다고 결론내렸다. 차 판사의 평소 성품과 합리적 의견개진을 묵살할 경우 '여론의 역풍'이 불 것을 우려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여성·장애인 법관 활용방안도…정도 넘은 '대응전략'

추가조사위원회의 조사결과 발표 뒤 만 하루가 지났지만 법관 사회는 점점 더 동요하고 있는 모양새다. 법원행정처 컴퓨터에서 나온 문건에서 법관이 동료 법관을 상대로 작성했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의 내용이 다수 발견됐기 때문이다.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소속 심의관이 2016년 3월 작성한 '사법행정위원회 후보자 검토' 문건에는 사법행정위원회 구성에 법원행정처의 의견을 잘 따를 것 같은 법관을 추천하는 방안이 담겨있다.

해당 문건에는 평소 양승태 대법원 사법정책에 비판적인 판사들을 배제하기 위해 각 고등법원장이 사법행정위원회 위원을 선별해 추천할 수 있는 기준을 담고 있다.

문건은 법원행정처의 입맛에 맞는 후보자 추천 기준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추천 기준으로는 '법관 사회 상징성'을 확보하기 위해 '여성법관 명단 분석 및 장애 가진 법관 포함' 등을 제시한다.

또 이 기준에 따라 총 64명의 법관을 직접 추려내기도 했다. 64명 법관의 명단을 담은 문건에는 추천대상 판사의 나이, 출신학교, 가족관계, 친소관계, 기본성향과 젊은 법관들에 대한 영향력 행사 가능성 등이 빼곡히 기록돼 있다.

특히 시각장애를 딛고 최초로 법관이 된 최모 판사에 대해 "장애에도 불구 밝고 합리적" "시각장애인으로서의 상징성" 등을 비고란에 기입하는 등 동료 법관의 장애를 법원행정처에 비판적인 의견을 묵살하는 도구로 활용하려 했던 정황마저 포착됐다.

이 같은 보고서 내용을 접한 일선 법관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A 법관은 "처음에 법원행정처가 법관들을 뒷조사한 문건이 있다고 들었을 때 막연히 어느 정도 수준이겠구나 생각은 했었지만, 실제 문건내용을 확인하고 나니 말을 이을 수 없을 정도로 참담하다"고 말했다.

B 법관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가 추가조사를 왜 받아들이지 않았는지 이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다"면서 "법원 구성원들이 더 나은 법원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의견을 내고 이에 대해 논의를 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던 것 같다"고 꼬집었다.

C 법관은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며 "법관 1명이 또 다른 법관을 동료로 존중하기 이전에 인격체로서 존중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지경"이라고 말했다.

그는 "법원행정처가 문건에 담긴 사찰정보들을 수집하는데 얼마나 많은 법관들이 동참했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며 "법관 사회에 동료에 대한 감시체제를 구축해 또 다른 '법관 길들이기'를 한 게 아닌가 생각마저 든다"고 덧붙였다.[법조전문기자·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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