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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국민들은 트럼프 시위 지지를 반길까

[최종일의 세상곰파기] 이란의 시위와 트럼프 개입

(서울=뉴스1) 최종일 기자 | 2018-01-03 14:17 송고
1일 (현지시간) 이란 잔잔에서 경제난 해소와 정치 개혁을 요구하는 시위대에 대항하여 정부를 지지하는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며 행진을 하고 있다. © AFP=뉴스1 

영국과 러시아 영향력 사이에 끼어있던 이란은 세계 2차 대전 이후 폐허가 됐다.

막대한 석유를 보유했지만 '검은 황금'은 훗날 BP로 사명을 바꾼 앵글로이란석유회사(AIOC)의 것이었다. 1950년대 들어 민족주의(내셔널리즘)가 저개발국에 확산되며, 이란에서도 외세의 천연자원 소유가 부당하다는 인식이 커져갔다.

당시 자유주의 성향의 개혁가들과 지식인층, 중산층 전문직 종사자들은 이란의 국부를 되찾아야 한다는 열망에 한데 뭉쳤다. 이들 중심엔 변호사 출신의 모하메드 모사데크가 있었다. 그는 혁명가가 아니었다. 이란의 전통적 사회 계층을 옹호했고 입헌군주제도 존중했다.

하지만 모사데크는 더 민주적이고 현대적인 이란을 갈망했다. 이란 원유 국유화와 대중 교육 및 언론 자유 확대, 사법 개혁 등이 그의 주장이었다. 1951년 모사데크는 의회에서 총리로 선출됐다. 그는 의회가 석유 국유화를 결정하지 않으면 총리직을 맡지 않겠다고 배수의 진을 쳤다. 그의 뜻은 관철됐다.

영국 가디언은 "(2차 대전 이후 쇠락하고 있던) 영국은 모사데크 총리의 AIOC 국유화를 전략적, 경제적 이익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봤다. 하지만 영국은 미국의 지지를 필요로 했다. 아이젠하워 행정부는 쉽게 설득됐다"고 전했다.  

AIOC가 이란 정부에 협력을 거부하자 이란은 외국 기업인들을 추방했다.

이에 영국은 분개했다. 군을 동원해 영국이 지은 당시 전 세계 최대였던 아바단 정유소의 권리를 빼앗기도 했지만, 클레멘트 애틀리 당시 총리(1945~1951년 재임)는 서방에서 이란산 석유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이며 이란을 경제적으로 압박했다.

모하메드 모사데크 이란 전 총리 © AFP=News1

1952년 판로가 막히자 이란 경제는 붕괴 직전까지 갔다. 이 같은 상황에서 후임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은 모사데크 정부 전복을 꾀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영국 비밀정보국(MI6)과 쿠데타를 기획, 진행했다. 일명 아작스(Ajax) 작전이었다. 미 정부에 매수된 시위대로 인해 이란 사회는 급속하게 위기로 빠져들었다. 혼란 속에서 파즈롤라 자헤디 장군은 군을 동원해 질서를 되찾았다.

60년이 지난 2013년 공개된 미국 기밀문서에 따르면 CIA는 당시 쿠데타를 기획했다. 이란 정치인과 군 장성 등을 사전에 매수했고, CIA가 돈을 주고 사주한 폭도 상당수가 시위에 참가했다. 시위 중 시민 200~300명이 사망했다. 쿠데타 이후 자헤디 장군은 모하마드 레자 샤 팔라비(샤는 이란 국왕 칭호)에 의해 정부를 꾸렸다. 모사데크 총리는 반란죄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여생을 가택 연금 당했다.

미국이 기획한 쿠데타는 현대 중동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가 됐다. 팔라비 왕이 권력유지를 위해 미국에 의지하며, 국민들에게 무자비한 권력을 휘두르면서 이란 국민들 사이에선 반서방, 반미 의식이 확고하게 자리잡았다. 팔라비 왕조는 26년간 통치를 계속했고, 1979년 이란혁명에 의해 축출됐다. 이란은 이후 서구의 영향력을 거부했다.

이란과 미국의 첨예한 대립은 이후에도 지속됐다. 미국은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을 지지했다. 1980년대 거의 10년간 지속됐던 전쟁에서 이란을 밀어내려했다. 이란-이란크 전쟁으로 100만명 이상이 사망했다. 더욱이, 미국은 후세인 정권이 화학무기를 사용하는 것을 알았지만 눈 감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시위 지지

지난달 28일 시작돼 이란 전역에서 계속되고 있는 반정부 시위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일 트위터 계정을 통해 "이란 시민들이 드디어 잔인하고 부패한 이란 정권에 맞섰다"며 시위대를 옹호했다.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이 말에 시위대가 힘을 얻을까. 오히려 이란이 처한 상황을 악화시킬 것 같다는 진단에 힘이 실린다.

1979년 이란혁명 때의 테헤란 모습 © AFP=News1

지난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중동과 중남미에서 군사 쿠데타를 지원했던 미국의 정책을 대다수 중동 국가들은 알고 있다. 1954년 과테말라에서도 CIA는 쿠데타를 기획했다. 선거로 집권한 하코보 아르벤스 정권이 토지 분배 개혁을 추진하자 미국의 지원을 받은 카를로스 카스티요 아르마스 대령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다. 이 사건은 체 게바라가 폭력 혁명을 꿈꾸게 하는 계기 중 하나가 됐다. 

미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등 몇몇 국가를 제외하고 대다수 중동 국가들은 과거 CIA의 공작 작전을 미국이 다시 쓰고 있는 것으로 간주할 여지가 크다. 민주적인 시위라 하더라도 강경 진압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란 내에서는 강경파들로 하여금 외부세력이 시위에 개입했다는 명분을 제공한다. 이란의 정예 혁명수비대를 비롯해 사법부 등 핵심 정부 기관에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이번 시위에 '이란의 적'이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시위대가 요구한 생활고 해결 요구는 묻힐 수밖에 없다.

개혁·개방을 주장하며 2013년 당선돼 재선에 성공한 온건파 하산 로하니 대통령의 입지는 줄 수밖에 없다. 이란의 고립을 끊겠다며 서방 국가들과 핵협상을 타결시킨 로하니 대통령은 이번 시위를 하메네이와 혁명수대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기회로 삼으려 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말 로하니 대통령은 시위에서 폭력은 배제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도 시위대의 의견 표출 자유는 인정했다. 그는 정부 당국이 시민들에게 '합법적인 비판의 여지'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로하니 대통령의 영향력이 미치는 국영방송과 통신사들은 시위 모습을 빈번하게 보도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개입과 이란 강경파의 부상은 로하니 대통령의 구상에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AFP=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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