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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쯤 쿠바를 떠올려봤을 당신에게

[최종일의 세상곰파기]쿠바, 8일간의 기록 ②

(서울=뉴스1) 최종일 기자 | 2017-11-06 15:48 송고 | 2017-11-07 09:46 최종수정
쿠바 산타클라라에 있는 체 게바라 동상 © 최종일 기자=News1

# 체 게바라

오늘은 불꽃같은 인생을 살다간 체 게바라의 도시 산타클라라에 잠시 들렀다. 이곳은 풀헨시오 바티스타 정부군의 무장열차를 혁명군이 습격해 탈취에 성공한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이 전투는 1959년 혁명군의 승리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체 게바라의 대형 동상은 그가 이 도시에 처음 들어왔을 때처럼 팔에 깁스를 한 채 산타클라라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체 게바라 박물관과 추모관도 이곳에 있다. 인간적 매력이 공산주의 선전장이란 불편함을 압도했다. 맑은 눈에 검은 베레모 그리고 덥수룩한 수염이 눈길을 끄는 체 게바라는 의사로서 평탄한 삶이 예정됐던 조국 아르헨티나를 떠나 쿠바 혁명에 자신을 던졌고 볼리비아에서 게릴라 조직을 이끌며 또다른 혁명을 꿈꾸다 정글에서 붙잡혀 총살됐다. 1967년 그의 나이 39세였다. 그의 유해는 30년만에 발견돼 1997년 이곳에 묻혔다.

체 게바라가 쿠바 시민권과 모든 직위를 내려놓고 쿠바를 떠날 때 카스트로에 남긴 편지 마지막 구절은 '영원한 승리의 그날까지'(Hasta la victoria siempre)이다.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가이자 작가인 장 폴 사르트르는 1960년 연인이었던 여성 해방 운동가 시몬 드 보부아르와 함께 쿠바를 방문했을 때 체 게바라를 만났다. 사르트르는 7년 뒤 사망 소식을 듣고 체 게바라는 "지성인일뿐 아니라 우리 시대에 가장 완벽한 인간이다"고 평가했다.

쿠바 산타클라라에 있는 체 게바라 추모관 © 최종일 기자=News1

# 피델 카스트로

동지이자 쿠바를 50여년간 통치했던 피델 카스트로의 운구도 산타클라라를 지나갔다. 지난해 12월 썼던 기사다.

"지난달 25일(현지시간) 90세를 일기로 별세한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의장이 1일 중부 도시 산타클라라에서 혁명 동지 체 게바라와 만났다. 서거 다음날 화장된 카스트로의 유해가 담긴 상자가 실린 트레일러를 뒤에 단 군용 지프 차량은 쿠바 전역을 도는 나흘 간의 여행을 전일 시작했고, 이날 산타클라라에 처음으로 멈췄다.카스트로가 1959년 독재자 풀헨시오 바티스타를 몰아낸 뒤 동부 산티아고에서 아바나까지 진군했던 여정을 거슬러 올라가는 이번 여행을 시작했을 때 쿠바 국민들은 거리로 나와 "나는 피델이다"를 외쳤다. 운구함은 이날 오전 0시를 넘어 산타클라라에 도착했고, 체 게바라의 묘와 추모관이 있는 곳으로 옮겨졌다. 카스트로는 과거 스페인 언론에 "그의 죽음은 믿을 수 없었다.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다"며 가끔씩 꿈에서 체 게바라와 대화를 나눈다고 털어놓았다"


쿠바 산타클라라 인근 석양 © 최종일 기자=News1

# 저녁놀

해질녘 버스는 산타클라라를 떠난다. 에메랄드 빛 카리브 해를 만날 수 있는 바라데로까지는 3시간 거리. 도로환경이 크게 나쁘진 않다. 지친 배낭여행자들을 실은 중국산 버스는 촉촉이 내리는 비를 맞으며 3차선 도로를 여유롭게 달린다. 버스 앞 유리엔 체 게바라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이어폰에선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찬찬'이 흘러나오다. 저 멀리 보이는 야자수들이 저녁놀에 불타고 있다. 세상에 나온 지 50년은 넘었을 것 같은 올드카가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이따금 지나간다. 내가 ‘혁명과 낭만’의 나라 쿠바에 와있구나.

# 혁명 1세대

쿠바 앞에 놓인 길이 평탄할 것 같진 않다. 자본주의에 대한 동경과 카스트로 형제의 독재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어떤 현지인은 중국이나 베트남과 같은 국가 지도부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았고, 어떤 이는 사회주의 색채가 짙은 유럽식 민주주의 도입을 주장하기도 했다. 개방이 한층 탄력을 받으면 갖가지 요구는 빗발칠 수밖에 없다.

공산당 지도부가 이를 수용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라울은 혁명 1세대로 현재 80대이다. 전임 피델과 함께 약 60년을 통치했다. 쿠바가 혁명 이후 앞으로 거의 나아가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서서히 침몰해가는 배에서 태평양을 누볐던 과거의 호시절만 되뇌는 선장처럼 보인다. 또 카리브해와 중미 국가들의 사회 혼란상과 빈부 격차 등을 감안하면 개방은 뼈저린 후회로 나중에 받아들여질 수 있다.

쿠바 바라데로 앞바다 © 최종일 기자=News1

# 카리브해

바라데로에 왔다. 소련 붕괴 이후 지원이 끊기자 관광업 진흥을 위해 쿠바가 1990년대에 조성한 도시다. 비수기라 서울 모텔보다 몇만원 정도 더 비싼 올인클루시브호텔을 예약할 수 있었다. 낡긴 해도 시설이 나쁘진 않다. 유럽인들이 적지 않게 해변을 즐기고 있다. 쿠바인들도 자주 보인다. 자본주의가 조금씩 자리를 잡고 있다는 징표로 보인다. 어찌 됐든 섬나라 쿠바에서 처음 바다를 만났다. 지금 눈 앞에는 카리브해가 펼쳐져 있다. 물은 차갑지 않지만 바람은 시원하다. 피나 콜라다가 더 달달하다. 바다 건너엔 미국이 있다.

쿠바 트리니다드에서 만난 티코 운전자 © 최종일 기자=News1

# "쿠바의 방식"

쿠바 국민들은 대부분 친절했다. 'HOLA(안녕)' 한마디에 이방인에 대한 벽을 허무는 것 같았다. 체 게바라의 유품에서 터키의 국부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책이 있었다고 자랑스러워했던 터키계 프랑스인은 쿠바 국민들은 가난하지만 명예를 갖고 살고 있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장기간 지속된 경제난으로 가슴에 뭉쳤던 응어리는 특유의 낙천적 성격으로 푸는 것 같았다.

어떤 쿠바인은 누적 70만km 달린 닳고 닳은 '티코'를 가리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어떤 이는 기차 한 량을 뒤에 실은 트럭을 보며 놀라워하는 내게 "1000km 이상을 달리는 쿠바의 교통수단"이라며 자랑했다. 아바나에서 볶음밥과 비슷한 길거리 음식을 사먹을 때 점원은 "쿠바의 방식"이라며 종이 상자를 푹 찢어 숟가락 모양으로 만들어 건넸다. 환한 미소와 함께.


allday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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