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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공산당대회 관전포인트-2] 시진핑 집권 연장

(서울=뉴스1) 박형기 중국 전문위원 | 2017-10-11 07:30 송고 | 2017-10-11 10:25 최종수정
편집자주 중국 공산당대회 개막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 왔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중국 공산당대회 관전포인트]를 시리즈로 마련했다. 1,왕치산의 거취 2,시진핑 집권 연장 3,시자쥔의 대약진 4,시진핑 사상 당장 삽입 5,후계 구도 6,상임위 서열 순으로 연재한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은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덩샤오핑(鄧小平) 이후 최고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시 주석은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으로부터 권력을 물려받을 때부터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임기를 시작했다.
후진타오 전 주석과 시진핑 현 주석. 18차 당대회 당시 모습 - SCMP 갈무리
후진타오 전 주석과 시진핑 현 주석. 18차 당대회 당시 모습 - SCMP 갈무리

2003년부터 2013년까지가 임기였던 후진타오 전 주석은 전임인 장쩌민(江澤民)의 등쌀에 심한 마음고생을 해야 했다. 당시 나온 말이 ‘상왕정치’였다. 상왕인 장쩌민이 실질적으로 중국을 통치한다는 뜻이었다.

이에 후진타오는 복수를 한다. 시진핑으로 권력 교체기에 시진핑이 자신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물귀신 작전을 쓴 것이다. 공산당 최고 권력기관인 정치국 상무위에서 장쩌민이 우두머리인 상하이방과 자신이 우두머리인 공산주의청년단 상무위원의 숫자를 각각 1명씩 줄여 버린 것이다.

그래서 구성된 것이 현재의 상무위다. 시진핑의 태자당이 3명, 후진타오의 공청단이 2명, 장쩌민의 상하이방이 2명이다. 

후진타오가 전임자에게 시달리지 않도록 시진핑을 배려한 인사가 오히려 시진핑 1인 독재의 발판을 마련해 준 것이다.
게다가 시 주석은 집권 이후 심복 왕치산(王岐山)을 이용, 반부패 캠페인을 벌이면서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시 당서기 등 정적을 거의 완벽하게 제거했다. 그 결과, 시진핑 1인 독재 체제가 완성됐다.

◇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 :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고 했다. 이즈음에서 정권 연장 욕심이 들지 않으면 그것이 오히려 비정상이다. 시 주석은 영구집권은 아니더라도 집권을 연장하기 위해 암중모색을 하고 있다.

시 주석이 집권을 연장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중국 전문가들은 약 3가지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있다. 첫째 대놓고 국가 주석 3연임을 하는 방법이다. 둘째, 당 총서기 직 또는 군사위 주석 직을 유지하며 꼭두각시 국가 주석과 국무원 총리를 내세우는 방법이다. 셋째 덩샤오핑처럼 배후에서 ‘수렴청정’하는 방법이다.

◇ 중국판 3선 개헌 추진 : 현재 당헌상으로 국가 주석과 국무원 총리는 2연임만 가능하다. 그러나 시 주석은 당헌을 개정해 자신이 직접 국가주석을 3연임할 수도 있다. 중국판 3선 개헌을 추진하는 것이다. 

중국 언론들은 가장 유력한 차기 주자였던 쑨정차이(孫政才) 충칭시 당서기가 최근 낙마한 것은 시 주석이 3연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그를 미리 잘라낸 것이라고 보고 있다.
곤혹스러워 하고 있는 쑨정차이 전 충칭시 당서기 - SCMP 갈무리
곤혹스러워 하고 있는 쑨정차이 전 충칭시 당서기 - SCMP 갈무리

그러나 중국판 3선 개헌은 당내 다른 계파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 올 것이다. 또 지금까지 지켜져 왔던 공산당의 ‘규칙’을 깨는 것이다. 이는 하지하책이다. 

◇ 공산당 총서기 유지하면서 주석-총리 원격 조정 : 그렇다면 다른 방법이 있다. 당헌은 국가 주석과 국무원 총리의 임기를 2연임으로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공산당 총서기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규정이 없다. 

시주석은 이미 공산당 총서기다. 마오쩌둥 이후 처음으로 공산당 ‘주석제’를 부활해 3연임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주석과 총서기는 다르다. 공산당 최고 권력기구인 상임위에서 투표를 할 때, 총서기는 1/N의 투표권을 행사한다. 그러나 주석은 비토권을 행사할 수 있다. 시 주석이 주석이 됐건 총서기가 됐건 당권을 장악할 경우, 국가 주석과 국무원 총리는 꼭두각시를 내세우면 된다. 중국의 권력서열은 당군정이기 때문에 당권을 잡으면 국가 주석과 국무원 총리를 쉽게 통제할 수 있다. 

실제 그런 일이 있었다. 덩샤오핑 시절 실권이 없는 인물들이 국가 주석을 맡았다. 리셴녠(李先念)이 1983년부터 1988년까지, 양상쿤(楊尙昆)이 1988년부터 1993년까지 국가주석 직을 수행했다. 그러나 모든 권력은 덩샤오핑 손에 있었다.

◇ 권위로 통치한 덩샤오핑 모델 : 또 다른 방법은 덩샤오핑 모델을 따르는 것이다. 덩샤오핑은 생전에 한 번도 국가 주석이나 공산당 총서기를 역임한 적이 없었다. 그는 1981년부터 1989년 11월 7일까지 중앙당 군사위 주석을 지냈을 뿐이다.

말년의 덩샤오핑. 그는 무관이었음에도 중국을 통치했다 - 구글 갈무리
말년의 덩샤오핑. 그는 무관이었음에도 중국을 통치했다 - 구글 갈무리

군사위 주석은 군부를 장악하는 자리로, 공산당 총서기보다 더욱 막강한 자리다. 마오쩌둥이 설파했듯 모든 권력은 총구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이전의 모든 권력자들이 다른 것은 다 내려놓아도 군사위 주석 직만은 되도록 오래 지키려 했다.

덩샤오핑은 그러나 1989년 6.4 천안문 사태 이후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군사위 주석직마저 내놓았다. 완전히 무관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럼에도 덩샤오핑은 전권을 행사했다. ‘무관의 제왕’이었던 셈이다. 외국의 정상들도 덩샤오핑을 만나지 못하면 정상회담이 성사되지 않았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덩샤오핑이 무관이었음에도 실권을 행사한 것은 그가 권력이 아닌 ‘권위’로 통치했기 때문이다. 마오쩌둥은 권력으로 통치했다. 그가 죽자 문화혁명은 곧바로 끝났다. 그러나 덩샤오핑은 권위로 통치했다. 그가 죽었지만 개혁개방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덩샤오핑이 마오쩌둥 보다 훨씬 세련된 리더십을 구사한 것이다. 

게다가 그는 마오와 같은 혁명 당대였기 때문에 공산당 후배들에게 압도적인 권위를 행사할 수 있었다. 대장정에 직접 참여했던 덩샤오핑은 중국 공산당의 ‘살아 있는 전설’이었다. 이런 정통성과 통치술이 어우러져 덩샤오핑은 무관의 제왕이 될 수 있었다.

덩샤오핑 모델은 불가능하다. 시진핑에게는 덩샤오핑에 필적할 만한 권위가 없기 때문이다. 그가 공산당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적도 없고, 더욱이 그는 현재 반부패 캠페인을 무기로 정적을 없애고 있다. 공포정치를 실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반대 진영에 있는 사람들은 시진핑의 몰락을 학수고대할 것이다. 시진핑은 이들의 복수가 두려워서라도 권력을 연장하려 할 것이다. ‘독재의 악순환’인 것이다. 시진핑도 마오쩌둥처럼 권위가 아닌 권력으로 통치하는 전형적인 독재자다.

따라서 시진핑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두 번째 카드다. 공산당 총서기를 3연임하는 방법으로 집권을 연장하는 것이다. 이 카드가 그나마 실현가능성이 좀 있다. 

◇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 그러나 고인 물은 썩게 돼 있다. 또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할 수밖에 없다. 마오쩌둥이 말년에 문화혁명이라는 엄청난 실수를 저지른 것도 당내에 그를 견제할 세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시진핑도 마찬가지다. 견제와 균형이 없는 권력은 결국 실수를 낳고, 이 실수는 공산당 자체는 물론 중국 전체를 위험에 빠트릴 것이다.


sino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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