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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미장원이 '유홍준 미학'을 간판에 쓴 이유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서울편 펴낸 유홍준 교수의 미학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2017-09-26 07:12 송고 | 2017-09-26 10:32 최종수정
서울 강남의 한 미용실 앞의 입간판.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의 미학관인 '검이불루 화이불치'가 적혀 있다.(창비 제공) © News1
서울 강남의 한 미용실 앞의 입간판.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의 미학관인 '검이불루 화이불치'가 적혀 있다.(창비 제공) © News1

"제가 미학의 기초인 '검이불루 화이불치'를 하도 이야기 많이 했더니 동네 미용실의 입간판에도 그게 쓰여 있더라고요."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68)는 명절 때만 되면 목욕탕에 갔던 추억에 아래 동네에 있는 사우나에 가다가 큰길 가에 있는 미장원 앞을 우연히 지났다. 한자와 한글이 병기된 입간판이 서 있어 잠시 발을 멈추고 읽어보니 이렇게 쓰여 있었다. '최고의 미용실. 미 카사. 검이불루(儉而不陋,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이불치(華而不侈,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았다).'

최근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9~10권'서울편(창비)을 펴내고 서울 교보문고 광화문지점 등에서 잇달아 강연을 열고 있는 유홍준 교수는 이 일화를 소개하며 "놀랍고도 기뻤다"고 말했다. 한국 미술의 특징이라고 생각하는 점이자, 자신의 심미관이이기도 해 답사기에서 자주 인용한 '검소하면서도 화려한' 미학이 미를 추구하는 미용실의 입간판으로까지 사용된 것이 좋았다는 것이다. 

'삼국사기'의 '백제본기'가 백제예술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했던 이 문구를 답사기 3권에서 처음 언급한 이후 유교수는 줄곧 이 미학을 일상에서 간직하며 계승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답사기는 잡지 '사회평론'에 연재되던 것을 창비의 명예편집인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가 눈여겨보고 출간을 제안해 1993년 초판이 발행됐다. 그후 '한국 인문서 최초의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던 이 책은 최근에는 판매량이 390만부를 돌파, 400만부를 향해 가고 있다. 하지만 유 교수는 처음부터 이 책이 큰 반향을 몰고 올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햇수로 25년 동안 이어졌지만 "애초에는 이렇게 많이 쓰게 되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3권으로 끝내려 했는데 쓰다보니 이렇게 됐다"고 한다.

답사기의 인기 비결에 대해 전문가들은 재미와 정보가 잘 조화를 이룬 점을 들고 있다. '유홍준, 황석영, 백기완'을 일컬어 ‘대한민국의 3대 구라’라고 하고 또 '유홍준, 이어령, 김용옥'을 묶어서 ‘대한민국 3대 교육방송'이라고 하는데 이 둘에 공통으로 유홍준 교수가 들어있다. 깃발을 앞세우고 혹은 부채를 쥐고 답사단을 이끌면서, 혹은 혼자서 수차례 답사하면서 모은 정보를 유 교수는 치밀한 계산하에 답사기 한 꼭지 안에 재미있게 배열한다.  

유 교수는 "나는 답사기를 쓸 때 한 꼭지를 100매 기준으로 쓴다"고 했다.  한 사람이 소파에 누워서 읽을 수 있는 최대치인 단편 소설 한편 분량으로 계산한다는 것이다. 분량만 단편소설이 아니다. 내용도 기승전결로 딱 떨어지게 한다. 전형적인 기행문의 틀이 싫어서 모든 꼭지의 콘셉트를 달리해 청중에게 해설하는 형식도 취하고, 혼자서 거닐기도 하고, 문헌 속을 헤집기도 한다.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News1


유홍준 명지대 교수의  강연 모습.(전주대 제공) © News1 
유홍준 명지대 교수의  강연 모습.(전주대 제공) © News1 

‘검이불루 화이불치' 외에 그가 답사기를 통해 대중들에게 알린 또 다른 유명한 문구는 조선시대 한 문인의 말을 인용한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다'다. 이는 '아는 만큼 보인다'로 축약되면서 1990년대 국토 답사 붐을 일으키며 우리 문화재와 국토 사랑의 마음을 심었다. 

유홍준 교수가 강연이나 책에서 자주 건네는 말로 '명작은 디테일에 달려있다'는 말도 있다. 그 예로 유 교수는 수직과 수평의 선만 이용하는 데도 격자·만자·마름모꼴 능화·사방연속 무늬를 다채롭게 만들어진 낙선재 창문살을 든다. 이렇기에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 방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면서도 담백하고 활달하며 세심한 안목과 문체를 담고 있다는 평가다. 

'우리나라는 전국토가 박물관이다'로 시작한 1편은 '서울은 전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궁궐의 도시’'라는 말로 시작하는 서울편 9권과 10권으로 이어졌다. 모두 4권으로 구상중인 서울편에서 먼저 나온 9권은 조선왕조의 궁궐들, 10권은 한양도성, 성균관 등 조선왕조가 남긴 문화유산들을 다룬다. 

서울편 세 번째 권이 될 11권에선 인사동, 북촌, 서촌, 성북동 등 도성 둘레 지역을, 네 번째 권인 12권에서는 북한산과 한강을 중심으로 암사동 선사 유적 등을 다룬다. 각권 모두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공존하는 거대 도시 서울의 문화유산과 역사를 섬세하고 날카로운 통찰로 바라보는 한편, 그와 얽힌 이야기들을 편안한 입담으로 들려줄 예정이다. 

19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으로 등단한 유 교수는 미술 평론가로 활동하며 민족미술협의회 공동대표와 제1회 광주비엔날레 커미셔너 등을 지냈다. 이어 영남대 교수·박물관장, 명지대 문화예술대학원장, 문화재청장을 역임했다.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를 정년퇴임한 후 석좌교수로 있으며, 가재울미술사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유홍준 교수는 추석 연휴 동안 '김현정의 뉴스쇼' '김어준의 뉴스공장' 등에 출연하여 본인이 엄선한 답사 코스를 소개할 예정이다. 또 유 교수가 서울을 주제로 강연한 JTBC '차이나는 클라스'는 10월 말부터 방영된다.

답사단을 이끌고 있는 유홍준 교수가 손에 부채를 들고 있다.  유 교수는 집필, 강연, 답사를 할 때 꼭 부채에 본인이 생각해둔 설계(계획)를 메모해둔다.(창비 제공)© News1
답사단을 이끌고 있는 유홍준 교수가 손에 부채를 들고 있다.  유 교수는 집필, 강연, 답사를 할 때 꼭 부채에 본인이 생각해둔 설계(계획)를 메모해둔다.(창비 제공)© News1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서울편에 나오는 창덕궁의 궐내각사(창비 제공)© News1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서울편에 나오는 창덕궁의 궐내각사(창비 제공)© News1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서울편에 나오는 창덕궁 영화당(창비 제공)© News1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서울편에 나오는 창덕궁 영화당(창비 제공)©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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