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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기의 책보기] 나라 한 번 뺏기면 이리 힘들어

유선영의 ‘식민지 트라우마’

(서울=뉴스1) 최보기 북 칼럼니스트 | 2017-07-19 09:22 송고
© News1

1905년 을사늑약으로 조선은 사실상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가 됐다. 40년 후인 1945년 8월15일 미국 중심의 연합군에 의해 일제로부터 해방된 한반도는 극심한 이념적 혼란을 거쳐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들어섰다. 분단은 자유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 어느 일방의 독점을 허락할 수 없는 지정학적 약점 때문에 피하기 힘든 반도의 숙명이었다.

‘증오와 저주의 죽창’이 난무했던 이념적 대립은 제주 4.3 항쟁, 여순사건, 국민보도연맹, 빨치산, 6.25 동란으로 이어지며 일제시대 독립운동기간보다 훨씬 많은 민중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런 증오와 저주의 문화는 전쟁 이후에도 지속돼 현재의 우리에게까지 흘러내려 오늘도 각종 ‘혐오 사이트’들이 죽창의 증오와 저주로 도배되고 있다. 나는 이 증오와 저주의 뿌리가 ‘(일제) 식민지 트라우마’일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해 왔다.

대개의 역사는 어떤 사건, 시기, 의미를 중심으로 기록된다. 그러므로 이 트라우마는 정성적으로나 분석되고 추측될 뿐 정량적 역사로는 기록되기 힘들다. 사학자 유선영은 일제의 식민지민으로서 겪었던 신체적, 정신적, 감정적 폭력과 모욕의 외상이 망국의 백성들에게 ‘집단 불안’ 심리와 열세 집단을 향한 테러-제노사이드(집단학살)로 분출되는 공격성을 심어줬다고 한다. 나는 평소 일제로부터 형성됐던 계급적, 폭력적 문화의 잔재가 증오와 저주의 모습으로 여태 우리사회를 휩싸고 있다고 주장했던 바, 그 잔재가 바로 ‘내재된 불안과 공격성’이었음을 유선영의 ‘식민지 트라우마’에서 확인했다.

어딜 가나 ‘미개한 이등 국민’으로 ‘업신여김’을 당해야 했던 식민지민들은 열등감과 근대화된 외양의 정복자에 대한 동경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동일하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우월감)의 제한적 분출 때문에 안으로 공격성이 쌓였다. 피부 아래 숨은 공격성은 어떤 히스테리나 민감성으로 표출된다. ‘식민화는 모든 사회구성원들에게 자신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질문하게 하고, 여러 가능성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밀어붙이는 체제’라서 특히 사회가 불안정할 때 개인들은 ‘정체성’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훈련된다.

식민지 조선에서의 모욕은 민족감정이라는 민족적 결속과 연대, 저항 전선을 형성하기도 했던 반면 체제에 순응하는 친일 전향자를 양산하기도 했다. ‘만주의 도시에서 신여성들이 자신이 조선인임을 들키지 않기 위해 일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양장으로 근대성을 과시하면서도 무표정, 무관심, 냉소적 표정으로 다른 사람들과 거리를 유지하려 했던’ 것은 스스로는 알고 있는 이등 국민의 열등감과 불안감 때문이었다. ‘조선인들은 다른 조선인이 이룬 성취를 조롱하고 평가절하하는 경향이 있다’는 제 3자의 평가처럼 식민지민들은 ‘자기 자신이 누리는 성취마저 불신’하는 ‘질병’을 앓게 됐다.

그러므로 정치적, 성적(젠더), 계층적 우월감이나 열등감으로 행사하는 모욕과 무시, 죽창의 저주와 증오의 시대를 넘어서 모두가 간절히 바라는 상호 인정, 타협, 협치, 통합의 시대로 가기 위해선 저 질병과 외상이 남긴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 있는 처방부터 연구하는 것이 먼저일 것 같다. 아마도 그 처방은 식민 역사를 훌쩍 뛰어넘는 ‘역사의 경쾌한 진보’가 아닐까.
  
◇식민지 트라우마/ 유선영 지음/ 푸른역사/ 2만 원


ungaung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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