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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민의 팩토리] 광화문 원조 도넛 아저씨의 유고

(서울=뉴스1) 윤석민 대기자 | 2017-07-14 08:05 송고 | 2017-07-14 09:00 최종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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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그의 자그마한 리어카는 비닐 커버에 덮인 채 한 귀퉁이에 초라히 놓여있다. 빛바랜 청색 비닐 위로 쌓인 먼지가 주인의 빈자리를 말해준다. 장대비에도 씻기지 않은 자국으로 미뤄 공백의 두께가 두껍다. 2개월은 족히 넘은 듯하다. 
   
내가 아는 그는 이 광화문· 종로일대 노점 도넛의 산 역사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10여년전 교보문고 옆이다. 리어카 위 좌판 한쪽에서 반죽으로 꽈배기를 만들고 단팥을 넣은 동그란 도넛을 빚었다. 옆에서는 부인인 듯 아주머니가 기름 가득한 솥에서 갓 튀긴 도넛을 건져 설탕을 묻혀 내놓는다. 파는 것은 수완 좋은 아주머니 몫, 아저씨는 묵묵히 반죽을 빚을 뿐이다. 갓 튀긴 도넛과 꽈배기는 살살 녹았다. 점심후 저마다 커피 한잔을 드는 풍경이 그나마 없던 당시라 손님도 꽤 쏠쏠했다.
  
묵묵한 그와의 첫 대화가 생각난다. 재료인 설탕, 밀가루 가격이 올라 죽겠다는 푸념이었다. 아마 2008년께일 것이다. 금융위기에 빠져나온 자금이 원자재에 몰리며 슈퍼 사이클의 질주가 시작됐다. 유가가 폭등하고 식탁 물가도 연일 치솟아 가계의 탄성이 고조될 때였다. ‘백색파동’에 업계의 꼼수도 나타났다. 정부 억제와 여론에 의해 물가 인상이 여의치 않자 슬쩍 용량을 줄이는 눈속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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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속 송강호가 큰 입을 벌려야 먹던 초코 과자는 이제 아이유도 한입에 쏙 넣을 만한 크기가 돼 있다. 봉지는 빵빵한데 뜯으면 공기 반인 ‘질소 과자’ 논란도 나타났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한 개 250원이던 아저씨의 도넛은 그 시기 300원, 400원으로 ‘천원에 세 개’가 됐던 것 같다. 요즘은 한 개 700원, ‘세 개에 이천원‘이니 또 격세지감이다. 그래도 아저씨의 도넛은 크기도 맛도 변함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저씨 노점이 자취를 감췄다. 당시 종로1가 일대 재건축 바람이 일면서 장사 터를 잃은 것으로 보인다. 한참이 흐른 후 그를 다시 만난 곳은 종각에서 조계사 쪽으로 가는 피맛골 끝자락이다. 공교롭게도 회사 바로 옆 담장과 딱 붙어있다. 그는 그사이 많이 초췌해 있었다. 노점 리어카의 크기는 절반으로 줄어 있었고 옆에 아주머니도 보이지 않았다. 추후 인근 호떡 노점을 하는 동료 후배를 통해 상처(喪妻)를 전해 들었다. 혹하는 불길함에 직접 물어볼 수 없었던 말이다.

혼자된 그는 늘 그 자리서 묵묵히 도넛을 튀겼다. 아무래도 목이 그래서인지 장사는 영 신통치 않아 보였다. 그의 이전을 아는 자칭 단골이 볼 때마다 가슴이 아렸다. 그러다 너무 기쁜 장면을 목도했다. 인기 TV 프로 ‘무한도전’(2013년 11월 방영 관상 특집편)에서 그를 마주한 것이다. 유재석이 그의 노점에 들러 도넛을 맛나게 먹는 모습이 나온다. 그 프로의 위력을 알기에 속으로 환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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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  MBC방송 캡쳐 © News1

다음에 들른 그의 노점은 변함이 없었다. 궁금함에 먼저 입을 떼었다. “유재석 왔다 갔는데 손님 좀?” 그저 얼굴 한번 쳐다볼 뿐이다. 내가 되레 답답했다. ‘유느님’ 거론하며 브로마이드 하나라도 걸면 광고 효과 대박 난다 어쩐다 운운했던 것 같다. 살짝 눈을 치켜뜬 그는 표정으로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  더이상 말을 잃는다.

변화가 두려울 것은 없다. 다만 난 변함없이 그대로인데 시간의 타임머신을 탄 세상은 저만치 앞서가니 아쉬울 따름이다. 아저씨의 나이 78세. 그를 다시 마주할지…. 오늘도 그의 리어카는 비닐에 덮인 채 한 귀퉁이에 놓여있다. 또하나의 역사가 장을 넘기는 건가.

그가 빚은 꽈배기와 도넛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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