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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기의 책보기]공간, 불편하거나 혹은 따뜻하거나

김명식의 ‘건축은 어떻게 아픔을 기억하는가’

(서울=뉴스1)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 2017-06-21 09:22 송고 | 2017-06-21 09:23 최종수정
© News1

2012년 ‘건축학 개론’이란 영화가 상영됐었다. 대학 때 만난 건축학도와 음대생 남녀가 사랑 아닌 사랑을 나누다 헤어진다. 졸업 후 건축사가 된 남학생이 그녀를 다시 만나 그녀가 살고 싶어 하는 집을 짓는 과정에서 사랑도 같이 짓는다는 대강의 줄거리로 기억된다.

처음엔 영문학도 불문학도 아닌 건축학이 멜로 영화의 제목이냐 싶었지만 사랑에 덧붙여 건축이란 것이 그저 벽돌 쌓고 지붕 씌우는 단순한 ‘삽질’이 아니라는 메시지 전달까지 꽤 성공한 영화였다.

발전한 문명의 사회일수록 경제, 경영, 외국어 등 실용학문에서 인문학과 예술을 거쳐 문화인류학이나 고고학으로 시민들의 관심이 진화한다고 한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바다 생물, 숲과 나무, 도시와 건축 등 ‘먹고사니즘’과는 멀어 보이는 소재를 다룬 책들을 소개할 기회가 점차 늘고 있다. 이게 만약 사회적 발전의 징표라면 ‘고고학’ 책을 대중적으로 편히 소개할 출판 환경도 빨리 오길 기다려 본다.

유사 이래 인류에게는 ‘건축과 공간’이 있었다. 건축은 모두의 공간으로부터 나만의 내적 공간을 확보하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그 공간이 절대적인 나만의 공간일 수는 없다. 모든 공간은 필연적으로 서로 연결돼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이다. 나만의 공간들이 모여 공동체의 삶을 위한 포괄적인 공간을 이루기에 나의 공간을 설계하고 짓는 것은 매우 조심스럽고 신중해야 한다.

나의 공간을 짓는 일도 하물며 그러하거니와 절대 권력자나 시대의 요구를 담는 공간을 건축하는 일이라면 그것을 지시하는 자와 건축하는 자는 천륜과 역사의 거울을 앞에 두고서 두려움에 떨며 그 일을 수행해야 한다. 폭약으로 큰돈을 번 노벨이 그 폭약이 부른 전쟁과 살상의 비극을 속죄(‘상쇄’라는 의견도 있음)하기 위해 노벨상을 제정했던 것처럼.

이탈리아에서 도시와 건축, 공간을 전공한 김명식 박사의 ‘건축은 어떻게 아픔을 기억하는가’는 비극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공간’을 더듬어 거기에 삼투된 건축(가)의 악(惡)을 캐낸다. 아니면 역사의 아픔이 어떠한 건축적 미학을 거쳐 선(善)한 공감으로 승화 됐는지를 캐낸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1976년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라는 김수근이 박정희 군사정권의 요청을 받아 세운 ‘작품’이다. ‘인권유린’을 염두에 두었던 이 공간은 1987년 1월14일 ‘박종철 물고문 치사 사건’의 무대로써 그 목적에 투철했다. 이는 결국 그 해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됐고, 지금은 그 공간이 ‘경찰청 인권보호 센터’로 바뀌어 원죄의 빚을 청산 중이다.

저자가 캔 이 공간은 불시에 눈을 가린 채 끌려온 인간에게 어떻게 하면 극도의 공포감을 줄 것인지를 ‘치밀하게 설계한 악의 공간’이다. 같은 건축가의 작품인 경동교회 역시 신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공존의 장을 꿈꾸었던 시도와 달리 건축학자인 저자의 눈에는 ‘닫힌 공간, 머나먼 신’으로 해석될 뿐이다.

주한 일본 대사관 앞의 ‘평화의 소녀상’, 마포 성미산 끝자락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식민지 백성이 겪어야 했던 고통의 기억과 풍경들이다. 서대문형무소는 감시자는 수감자를 볼 수 있지만 수감자는 감시자를 볼 수 없는 파놉티콘 구조가 응용되었다. ‘서소문 순교성지’, 베를린의 ‘유럽의 학살된 유대인을 위한 기념비’, 서울도서관 3층 ‘세월호 추모공간’은 고통스런 기억과 치유가 공존토록 설계된 공감의 공간이다.

◇건축은 어떻게 아픔을 기억하는가/ 김명식 지음/ 뜨인돌/ 1만5000원


ungaung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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