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본문 바로가기 회사정보 바로가기

[최보기의 책보기] 바람의 소리에 닿고 싶다

박상대의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가는 여행’

(서울=뉴스1)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 2017-05-24 09:19 송고
© News1

사람들이 소위 ‘서평가’에게 "책을 많이 읽을 수 있어서 좋겠다"고 한다. 또 "책을 읽는 것으로 돈까지 번다니 부럽다"고 한다. 단단한 오해다. 서평을 써야 하기에 읽을 마음이 전혀 없는 책을 읽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니 시간이 없어 정작 읽고 싶은 책은 읽지 못하는 스트레스가 작지 않다. 원고료 또한 지난 30년 동안 거의 변하지 않아 큰 돈벌이가 되는 일도 아니니 부러워하지 않으셔도 되겠다.

그런 이유로 서평가는 늘 ‘여행작가’를 부러워한다. 멋지고 아름다운 곳을 여행하는 것만으로 돈까지 번다니 얼마나 좋은 직업인가 말이다. 그런데 여행작가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기행문을 써야 하기에 별로 가보고 싶지 않은 곳을 꾸역꾸역 가야 해서 정작 가보고 싶은 곳은 못 가지 싶고, 기행문의 수입(원고료) 역시 서평의 그것과 크게 다를 것 같지도 않다.

어쨌거나 명색이 여행작가가 보통의 사람들처럼 평범한 ‘관광’이나 하고 다니면서 그걸 여행이라고 치부한다면 그건 스스로의 가치를 낮추는 일이다. 최소한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가는 여행’ 정도는 해줘야 한다.

여행이 주제인 월간 '여행 스케치' 발행인인 저자 박상대는 말 그대로 직업 여행작가다. 아름답거나 또는 비극적 풍경이나 눈으로 훑으면서 주변 맛집이나 소개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다. 그가 쓴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가는 여행’이 제 값을 하는 이유다. 그는 광경이 아닌 스토리를 여행한다. ‘바람, 그 느낌을 팝니다’ ‘흥, 흥겨운 세상을 이끈 아리랑’ '말, 가슴을 뚫고 나온 언어’ ‘운명, 쉽게 버릴 수 없는 것’ 같은 기행문 제목들이 그걸 말해준다.

그가 일착으로 찾은 곳은 ‘추임새, 세상을 하나로 이어주는 장단’이 있는 남원판소리전수관. 소리는 귀로 듣고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라 당연히 눈에 보이지 않는다. 판소리를 아는 사람들은 ‘소리하는 사람’보다 ‘(잘) 들을 줄 아는 사람’을 더 높이 쳐준다. 소리하는 사람을 명창이라 하고, "얼쑤! 잘한다! 에끼 나쁜 놈!"같은 추임새 잘 넣는 사람을 귀명창이라 한다. 판소리에 젖은 저자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느릿느릿 진도, 청산도, 문경새재의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역사학자 전우용 박사는 "고서나 우표 등의 수집은 특정 사물에 스민 시간을 박제해 가까이에 두는 것”이라 했다. 지나버린 시간들을 펼쳐 곁에 두려는 저자에게 정동진은 해돋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시간들을 펼쳐놓은 ‘시간 박물관’이 있었다. 그는 ‘갖은 시계들이 째깍째깍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느낌 없는 시간의 속도’를 아쉬워하다 “세월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진 자본금이다. 이 자본을 잘 이용하는 사람에게 승리가 온다”는 아뷰난드의 말로 독자를 위로한다.

그 바로 옆 동네 영월에는 '풍타지죽랑타죽(風打之竹浪打竹)-바람 부는 대로 물결 치는 대로’ 방랑했던 삿갓 시인 김병연의 시간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제주 두모악갤러리. 거제도 도장포 마을 ‘바람의 언덕’을 거친 바람들이 영월 지나 선자령 ‘바람의 날개’를 향해 웅성웅성 몰려가고 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가는 여행/박상대 지음/하이미디어P&I/1만 5000원


ungaungae@

이런 일&저런 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