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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망치질에 산산조각 난 건 '유리창'만이 아니었다

(서울=뉴스1) 박정환 기자 | 2017-05-03 16:22 송고
박정환 기자 © News1

"쨍그랑"

1일 밤 서울대 행정관(본관) 2층 기자실 창문은 투박한 망치질에 가차없이 깨졌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학생들은 깨진 창문을 통해 건물 내부로 진입했고 본관을 재점거하는데 성공했다. 직원과 학생들 간에 몸싸움이 벌어졌고 그 과정에서 부상자도 발생했다. 곳곳에서는 "성낙인은 퇴진하라", "시흥캠퍼스 실시협약 즉각 철회하라" 등의 구호가 울려퍼졌다.

이날 학생들의 망치질에 조각난 것 유리창 만이 아니었다. 학교와 학생의 공동체 관계도 유리조각처럼 산산히 깨졌다. 양측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루비콘강을 건너간 것인지도 모른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징계와 형사고발을 예고했다. 직원들은 "너네는 학생도 아니다"고 외쳤고, 학생들은 "폭력총장 물러가라"고 맞섰다. 애꿎은 본관은 서로 뺏고 뺏기는 '공성전'(攻城戰)의 상징 장소가 됐다.

대한민국 최고의 지성의 상징인 서울대학교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된 것일까. 구성원들은 사실 예견된 일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사태의 핵심인 시흥캠퍼스는 2007년부터 시작된 서울대의 역점사업이다. 학교는 그곳에 글로벌 융복합 연구단지를 조성하기로 하고 시흥시로부터 막대한 기금과 부지 지원을 약속받았다. 하지만 학생들은 그것이 부동산 투자나 대학상업화와 다름없다고 반발했다. 학생들의 의견이나 학문적 고민이 반영되어 있지 않는다고도 했다. 양측은 진통 끝에 2014년 1월 어렵게 대화협의회를 마련했다. 대화의 원칙은 '한달에 한번' 마주보고 시흥캠퍼스 계획을 논의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성낙인 총장 부임 후인 2014년 7월부터 약속은 어그러졌다. 협의체는 2014년 9월부터 2016년 5월까지 단 세차례밖에 열리지 않았다. 학교는 "큰 사업인만큼 신임총장이 사업을 검토할 시간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윽고 체결된 '시흥캠퍼스 실시협약' 체결이 갈등에 불을 붙였다.

1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 행정관 앞에서 열린 총궐기대회를 마치고 학생들이 행정관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서울대 총학생회 소속 학생 20여 명은 지난 27일부터 성낙인 총장 퇴진과 시흥캠퍼스 실시협약 철회를 촉구하며 행정관 점거농성을 벌였으나 이날 오후 강제 진압됐다. 2017.5.1/뉴스1 © News1 김다혜
1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 행정관 앞에서 열린 총궐기대회를 마치고 학생들이 행정관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서울대 총학생회 소속 학생 20여 명은 지난 27일부터 성낙인 총장 퇴진과 시흥캠퍼스 실시협약 철회를 촉구하며 행정관 점거농성을 벌였으나 이날 오후 강제 진압됐다. 2017.5.1/뉴스1 © News1 김다혜

2016년 8월22일 협약이 체결되는 날, 학생들은 학교로부터 협약체결 3분전에 전화로 통보 받았다. 현장에서 본 학생들의 표정은 분노로 가득했다. 첫 단추부터 잘못 꿴 갈등의 파장은 컸다. 그로부터 8개월이 넘은 현재 학생들은 구호는 여전히 '시흥캠퍼스 실시협약 철회'다.

학교는 뒤늦게 대화에 나섰지만 이번엔 학생들이 완고했다. 학교는 시흥캠퍼스 추진을 전제로, 학생들은 시흥캠퍼스 실시협약 철회를 전제로 대화에 나섰다. 거기에 학교는 대학발전이라는 '실용성'을, 학생들은 '상업화 반대'라는 이념을 꺼내들었다. 대화를 거듭할수록 서로 간의 갈등이 풀리기는커녕 불신만 깊어졌다. 소통이 안되니 서로 간의 신뢰가 무너졌고 급기야 서로는 '적'이 됐다.

분열은 또다른 분열을 낳았다. 본부와 학생은 각각 내부에서 다시 '매파'와 '비둘기파'로 나뉘었다. 서로 간 소통과 신뢰의 리더십은 실종됐다. 학생사회는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3월까지 153일간의 본관 점거농성을 하면서 수차례 총회를 가졌지만 통일된 행동방안 하나 제대로 결정 못하는 미숙함을 드러냈다. 학생들의 자체적인 결정을 기다리던 학교측도 강경 대응해야 한다는 매파에 힘이 실리면서 결국 본관 점거농성 중인 학생들을 강제로 끄집어내는 패착을 하고야 만다. 

적어도 지금 서울대에서는 '얻는게 있으면 잃는게 있다'는 지극히 당연한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망치질과 고성에 이르기까지 서로 잃지 않으려는 가치가 무엇인지도 이제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늦었다고 하는 순간이 가장 빠르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지금이라도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대화를 통해 타협을 모색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그 첫단추는 학교가 먼저 손을 내미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학생 징계, 형사고발 등 갈등의 빌미와 깊이를 더할 조치들을 거둬들이고 대화 할 분위기를 먼저 조성해야 한다. 학생들 역시 잘못의 우선 순위를 따지기 전에 학교측의 얘기에 귀 기울이는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이번 사태로 서울대의 미래를 걱정하는 국민들이 조금은 안심하지 않을까.  


k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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