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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승리' 촛불시민…"새로운 나라를 향한 첫 걸음"

미완의 승리…"87년 체제 넘어 '입법혁명' 이뤄야"

(서울=뉴스1) 박정환 기자, 전민 기자 | 2016-12-09 16:10 송고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소추안 표결을 앞둔 9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뒤편으로 보이는 청와대에 정적이 감돌고 있다. 2016.12.9/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소추안이 9일 촛불시민의 요구대로 가결됐다. 지난 10월29일 첫 광화문 촛불집회가 열린 후 41일 만이자 7월 최순실 관련 첫 의혹 보도가 나온지 5개월여 만이다.

만신창이가 된 나라에 분노해 역대 최대로 기록된 1987년 6월 항쟁을 훌쩍 넘어선 누적 연인원 647만명의 촛불 시민이 광장으로 떨져나와 이룬 업적이다.
그러나 이제 첫 관문을 넘었을 뿐 갈길은 멀다. 

시민들과 전문가들은 이번 탄핵 가결이 '시민들의 승리'이자 '새로운 나라'를 향한 첫 걸음이라고 분석했다. 대통령 직선제를 이끌어냈지만 시민의 손을 벗어난 87년 체제속 미완의 과제를 새롭게 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촛불, 그 후의 우리 사회에서 시민이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때란 요구이자 스스로의 다짐이다. 이에 앞서 명확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필수적인 선결과제다.  

◇6차 촛불집회 결정적…"시민들의 승리"
"시민들의 위대한 승리다. 자부심이 든다."

이제까지 꾸준히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는 "시민들이 대한민국을 바로 잡았고 진정한 주인이라는 것을 보여줬다"고 이날의 의미를 부여했다. 하 대표는 탄핵이 가결되기까지 결정적인 계기로 지난 3일 열렸던 '6차 촛불집회'를 꼽았다. 그는 "3차 담화 발표 이후 정치권이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였지만 232만명이 광장에 나오자 급물살을 탔다. 촛불시민들의 힘으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탄핵 가결이 시민들의 힘으로 이뤄졌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었다. 시민들이 촛불을 들때마다 정국은 변해왔고 정치권은 민심을 따라가기 급급했다. 탄핵 표결을 고민하던 새누리당 비박계는 6차 촛불집회 다음날인 4일 탄핵 대열에 합류했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은 "광장이 열렸고 일주일 단위로 검찰의 수사방향과 정치권의 반응이 바뀌었다"며 "나라의 정상적인 운영이 멈춘 상태에서 시민들이 거리에 나가 잘못된 나라를 바로 잡았다"고 밝혔다.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도 탄핵 가결에 대해 "당연한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서울 노량진역에서 만난 건설노동자 박종훈씨(58)는 "탄핵은 가결 되어야만 하고 가결시킬 것으로 믿었다"며 "(가결에 이르기까지) 태블릿 PC가 공개되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고, 가장 결정적인 순간은 박근혜의 3차 담화 같다. 모든 것을 부인했기 때문이다"라고 기억했다.  

서울 용산역에서 만난 회사원 한명철씨(56)는 "가결될 것으로 봤고, 큰 차이로 가결됐으면 했다"며 "촛불집회 때 주부들이 유모차를 끌고 나오고, 지방에서 시간을 들여가며 올라온 민심이 가장 기억에 남고 결정적인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라고 말했다.  

◇"완전한 승리 아직 일러"…'촛불 유지' 목소리도

전문가들은 이번 탄핵 가결에 상당한 의미가 있지만 아직 '완전한 승리'를 선언하기는 이르다는 분석을 제기하고 있다.  

국내외 혁명 역사를 연구한 최갑수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는 "시민들의 위대한 승리지만 아직 완전한 승리를 선언하기는 빠른 감이 있다"며 "특검에 의한 명확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아직 지켜볼 필요가 있다"라고 밝혔다.

송주명 민주화를위한교수협의회 상임의장(한신대 교수) 역시 "국민들의 관심은 박근혜의 즉각 퇴진과 더불어 여러 국정에 거쳐서 존재하는 적폐를 청산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전반적인 흐름을 봤을 때 이번 탄핵은 '승리의 첫걸음'으로 볼 수 있다"라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이미 '촛불 시민'들에 의해서 탄핵됐기 때문에 국회에서의 탄핵은 법적인 절차 중 하나였을 뿐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촛불을 든 시민들은 애초 하야 또는 퇴진을 요구했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일절 응하지 않았고 죄를 인정하지 않았기에 결국 탄핵으로 올 수밖에 없었다"며 "촛불 시민들은 어느 누구도 박근혜 대통령의 능력이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미 마음 속에서 탄핵시킨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아직 촛불을 끄긴 이르다"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대통령과 변호인은 특검 수사에 최대한 대응하면서 시간을 끌 것이고 정국의 변화를 도모할 것으로 본다"며 "탄핵 역시 헌법재판소에만 맡겨둘 수 있는 상황은 아니기 때문에 헌재가 결정을 내리기까지는 촛불은 유지되어야 한다"라고 밝혔다.

◇'87체제' 남은 과제…희망은 '시민'

탄핵 정국에 본격적으로 접어듦에 따라 촛불의 향방이 어떻게 이어질지도 미지수다. 일부 시민들은 '어떤 구호를 외칠 것인가' 하는 고민을 제기하고 있다. 

그동안 촛불집회에 참가했다는 한 시민은 "지금은 '박근혜 퇴진'을 외치지만 탄핵이 되고 나서는 어떤 것을 외쳐야 하는지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다"며 "탄핵 이후에도 특검을 통해 추가적인 범죄가 나올 수 있지 않는가. 촛불 내부 동력이 탄핵 이후에는 꺼질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라고 걱정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탄핵정국과 특검을 통해 오히려 풍부한 구호가 나오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다. 

서복경 연구원은 "탄핵 국면에 들어가고 특검에 착수하면 시민들이 외칠게 더욱 풍부할 것으로 본다"라며 "지금은 '박근혜 퇴진'이라는 구호 아래 많은 이슈들이 덮여 있다. 한일군사협정, 삼성, 국민연금 등이 대표적이고 국정운영도 워낙 사고가 많이 벌어지고 있어 이 문제도 주목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승수 대표 역시 "향후 정국에서 광장에 나오진 않더라도 가능한 많은 토론을 이어가야 하고 유사시 촛불을 언제라도 들 필요가 있다"며 "시민들의 힘이 그만큼 중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87년 대통령 직선제를 일궈내면서 민주화를 실현했지만 아직 못다 이룬 과제들을 이번만큼은 풀어내야 한다는 목소리도 상당했다.

송주명 의장은 "우리는 87년 6월항쟁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며 "당시 '직선제 개헌'을 관철시키면서 이제는 국가가 제대로 돌아가겠지라는 생각에 만족하고 물러났지만, 정치세력이 분열하고 권력을 탐하면서 한계를 보였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당시 직선제 개헌도 중요했지만 민주주의 공화국에서 어떤 가치가 중요한지, 공공성이 무엇이고 정부의 역할은 무엇인지에 대한 부분이 명확하게 고민되고 정해졌어야 했다"며 "박근혜를 끌어내리는 것은 하나의 출발점일 뿐이다. 이번만큼은 이제 우리가 새로 만들어야 할 대한민국은 무엇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최갑수 교수 역시 "우리 사회가 정권이 바뀐 적은 있어도 시민들의 목소리로 국가 체제가 정비된 적은 없다"며 "87년 체제를 뛰어넘어 헌법적 가치를 국민적 합의로 모아내는 '입헌혁명'이 필요하다. 정치, 검찰, 재벌 등 전반적인 개혁을 시민들이 이끄는 대대적인 정풍운동을 시작할 때"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시민들에게 너무 막중한 책임이 주어졌다는 현실에 안타까워 하면서도 이번 사태에서 발휘된 촛불의 힘을 비춰볼 때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내다봤다. 시민들이 사실상 엉망이 된 국가에 '희망'이라는 설명이다.

송 의장은 "200만명을 훌쩍 돌파한 촛불시민이 절제된 모습 속에서 자기 주장을 일관되게 외치고 변혁의 흐름을 만들어 낸 것은 우리나라가 유일할 것"이라며 "시민들의 고민을 정치권이 따라가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 지금보다 더 나은 국가를 우리 다음 세대에게 보여줄 수 있는가 그 중심에 시민들이 있다"라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이 열리는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시민단체들이 만장을 들고 있다. 2016.12.9/뉴스1 © News1 손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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