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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국회의 이벤트성 법안 남발에 멍드는 법치주의

(서울=뉴스1) 윤진희 기자 | 2016-11-26 07:00 송고
© News1
국민의 손으로 직접 선출한 대통령이 대한민국에 부끄러움을 죽비처럼 내렸다. 대통령은 '선의'를 표방하며 엉망이 돼 버린 나라꼴을 ‘의지와는 무관한 결론’으로 매듭지었다. 대통령의 무책임함에 국민들의 노여움은 사그라질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국회는 대통령의 헌법위반과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건이 드러나자 국민들 눈치만 봤다. 그러더니 궁여지책인지 법리상 문제가 많은 '이벤트성' 법안만 무책임하게 내던지고 있다.

23일 심재철 새누리당 의원 등 국회의원 10명이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 특별법을 발의했다. 해당 법안을 심재철 의원 등이 대표 발의한 뒷 배경에 대한 무성한 추측들은 굳이 거론하지 않고 심 의원실 관계자의 발언으로 대신하겠다.

25일 심재철 의원실 관계자는 "앞으로 유사 법안들이 나올 것이기 때문에 병합해서 심리를 하면 되고, 완벽한 체계의 법을 만들어 가면된다"고 밝혔다. 법체계상 문제가 있음에도 법안을 발의한 이유에 대해 답을 구했지만 이에 대한 명확한 해명은 듣지 못했다.

해당 법률안을 자세히 들여다봐도 국민들의 여론을 의식해 시류에 편승하고자 애쓴 흔적만 엿보일 뿐 법의 기본원리, 국민의 기본권 등에 대한 정밀하고 치밀한 분석과 고민 등은 찾아 볼 수 없다.  

해당법안은 현행법의 한계를 넘어 최씨의 재산을 몰수하겠다는 의도로 만들어진 법안이다. 입법목적과 취지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내용이고,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가 바라는 일이기도하다.

법의 취지가 좋다고 법의 기본원리를 몰각하고 헌법에 위배되는 법을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시민들이 폴리스라인을 지키며 광화문에 모여 촛불집회를 하는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해당법안이 '이벤트성'이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는 단 하나다. 해당 법안은 법으로서 생명력을 얻을 수 없을 만큼 위헌소지가 많다. 이 법안은 '명확성의 원칙'과 '형벌불소급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내용을 담고있다. 

해당 법안은 대통령 측근의 국정농단과 부정축재 등을 엄벌하겠다면서 대통령과 '법률상·사실상 친분관계'가 있는 사람이 특별법의 적용을 받도록 정하고 있다. 

형벌법규는 법률 자체로 어떤 요건 하에서 어떻게 처벌되는지가 법률에 명확히 드러내야 한다. 지엽적인 사항은 하위 법률에 위임할 수 있지만 처벌 대상이 되는 불법행위의 요건은 법률에서 객관적이고 명확하게 드러나야 한다는 얘기다. 해당 법안의 '친분관계'라는 단어로는 객관적으로 어떤 관계인지 명확하게 특정할 수 없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이 법안은 대통령과 친분관계에 있는 자들의 범죄행위에 대해 '공소시효' 특례를 정하고 있으면서, 공소시효 일반원칙을 배제할 만한 사유를 규정하고 있지도 않다.

법안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재산 조항도 몰수의 전제가 되는 '특정중대범죄'의 개념자체가 모호하기 때문에 역시 명확성 원칙에 위배된다. 헌재가 최근 위헌으로 결정한 법률 5건 가운데 4건의 위헌 사유가 바로 이 '명확성 원칙' 위반이었다.  

또 해당법안은 행위 당시에 법이 존재하지 않은 경우 나중에 법을 만들어 형벌로 처벌할 수 없다는 ‘형벌불소급의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심 의원 측이 주장한 '진정소급입법' 법리는 재산권이나 참정권을 제한하는 법률에 적용할 여지가 있을 뿐 형벌법규에는 적용될 수 없다. 

심 의원 등 법안발의자들이 '몰수'가 형벌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입법부 구성원으로서의 자격조차 의심받아 마땅하다.

문제는 또 있다. 해당 법안의 내용을 뜯어보면 뜯어볼수록 기존 법과 제도에 대한 검토를 통한 입안이 아니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법을 만드는 입법부의 구성원인 국회의원이라면 자신의 이름으로 대표 발의하는 이벤트성 법안을 남발할 게 아니라 기존의 법률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여부를 꼼꼼하게 검토했어야 한다.

검토 결과 도저히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판단이 들었을 때 법과 제도를 개정 할 것인지 새로 법을 만들 것인지 숙고해야 한다.

이 땅의 국회의원들이 마구 내던진 법안들이 국민에게 부메랑이 돼 돌아온 사례는 부지기수다. 이름만 '섹시'한 법안으로 '혹세무민' 한다는 비판이 넘실대는 이유다.

해당 법안은 심재철, 하태경, 노웅래, 김성태, 정인화, 이종구, 정양석, 나경원, 김재경, 오신환 의원 등이 발의했다.


jurist@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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