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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이색 채용공고낸 홍윤경 대표…"향기로운 사람 뽑아요"

조향기업 수토메 아포테케리 대표 "인공적인 사람은 싫다"
"우리의 채용 방식, 양측 모두에 도움되길"

(서울=뉴스1) 김일창 기자 | 2016-08-27 07:00 송고
22일 오후 서울 강서구 월드컵로 수토메 게스트하우스에서 홍윤경 수토메 아포테케리 대표가 뉴스1과 인터뷰를 갖고 있다. 2016.8.22/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22일 오후 서울 강서구 월드컵로 수토메 게스트하우스에서 홍윤경 수토메 아포테케리 대표가 뉴스1과 인터뷰를 갖고 있다. 2016.8.22/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향기를 만드는 조향 기업인 수토메 아포테케리가 '이색' 채용공고를 냈다. 자기소개서 대신 대표가 추천한 책 몇 권과 '입사 지원 제한'이 눈에 띈다. 서두가 길 필요는 없다. 채용공고를 먼저 보자.

◇줄기, 채용공고
다음은 일부 편집을 거친 '채용공고문'이다.

'수토메 아포테케리'(Apotheke 독일어로 약국)에서 2017년 상반기에 직원을 채용할 예정입니다. 국적과 성별, 성적 지향, 연령, 학력, 경력, 학연과 지연 등 일반적인 채용 기준은 전혀 적용하지 않으며 다소 특수한 사항들이 있어 여유를 넉넉히 두고 공고합니다. 시간제(수토메 아포테케리 파트타이머 기준 시급 1만원)로 6개월의 인턴십 기간을 거치며, 첫 업무는 온라인 주문 관리와 제품 생산, 고객 응대입니다. 주 5일/하루 7시간 근무를 원칙으로 합니다. 추후 결격사유가 없는 한 브랜드를 함께 키워 나가는 과정에서 본점 혹은 국내외 직영점의 매니저로 근무하게 될 것입니다. 수토메 아포테케리와 함께 하기 위한 필수 조건들을 알려드립니다.

<독서 목록>
-이반 일리치(Ivan Illich)와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의 저서들: 수토메 아포테케리의 브랜드 철학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철학자 이반 일리치와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의 저서들을 읽어 주세요. 획일화된 문화와 수동적 태도를 강요하는 사회에 대한 강력한 비판의식을 기르고, 본질을 꿰뚫는 사고를 기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아널드 하우저(Arnold Hauser)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전권: 고전을 만든 위대한 예술가들의 이야기는 이성과 감성, 정체성조차 일회적으로 소비되는 사회 안에서 '오래 남는 것'과 '진정한 명품'의 가치를 기억하게 합니다.

-문숙의 '문숙의 자연 치유': 수토메 아포테케리의 향기는 겉모습을 매력적으로 가꿔주는 것을 넘어, 내면의 아름다움에까지 관여합니다. 자연을 적게 빌어 크게 쓰는 전체론적(Holistic) 삶을 구축하고, 자연에서 얻는 지혜를 설득력 있는 방식으로 타인에게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입사지원 제한>
아래의 사항에 해당하면 입사 자격이 엄격하게 제외됩니다.
-화학 성분 가득한 화장품과 향기 제품을 애용하는 분, 육식과 인스턴트 식품을 지나치게 즐기는 분, 짙은 화장과 건강을 해치는 패션으로 몸을 학대하는 분, 과도한 성형수술 및 각종 시술로 자연미를 잃은 분, 인간의 존엄보다 종교를 우위에 두는 분, 환경·인권·동물권 문제보다 물질적 탐욕을 앞세우는 분.
22일 오후 서울 강서구 월드컵로 수토메 게스트하우스에서 홍윤경 수토메 아포테케리 대표가 뉴스1과 인터뷰를 갖고 있다. 2016.8.22/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22일 오후 서울 강서구 월드컵로 수토메 게스트하우스에서 홍윤경 수토메 아포테케리 대표가 뉴스1과 인터뷰를 갖고 있다. 2016.8.22/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뿌리, 대표의 삶

"일반적인 채용 과정을 보면서 구직자와 구인자 모두 시간 낭비하는 것을  자주 봐요. 채용을 준비하는 것도 사람을 뽑는 것도 우리가 사는 '시간' 속에 있잖아요. 그 시간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았어요. 지원하는 사람도, 뽑는 저도 그렇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러한 채용공고를 작성하게 됐습니다"

22일 오후 7시, 서울 마포구에 있는 수토메 아포테케리 사무실에서 만난 홍윤경(32) 대표는 기자의 '왜'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다음달 기업들은 본격적인 하반기 공채에 나선다. 우연히 본 이 채용공고문에 이끌려 그에게 인터뷰를 제안했고 만남이 성사됐다.

대학에서 미술사를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중세-르네상스 미술'을 공부, 국내서 내로라하는 갤러리에서 큐레이터로 일했지만, 어느 순간 게스트하우스의 대표가 된 그다. 그러다 평소 꾸준히 해왔던 조향업에 자연스럽게 눈이 갔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짝에서 늘 좋은 향기가 났어요. 궁금해서 물어봤죠. '어떻게 늘 좋은 향이 나?', 그러자 친구는 어머니가 유럽 분인데 향에 관심이 많아서 직접 만들어서 쓴다는 거예요"

그 후 홍 대표는 방과 후나 주말을 이용해 친구 어머니로부터 향기 만드는 법을 배웠다. 유복한 가정환경에서 자라 마음에 드는 물건을 쉽게 살 수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직접 만들어 쓰는 것에 마음이 끌렸다.

"고등학교 시절 이후 향수를 직접 만들어 썼어요. 비누도 만들어 썼는데 회사에 다니면서 팔기도 했죠. 그 정도 였는데, 게스트하우스의 첫 겨울이 지나고 어느 정도 더워졌을 때 냄새가 나더라고요. 그때 향수를 만들면서 냄새를 잡았는데 그 향을 손님들이 좋아해 주고 또 구매하고 싶다는 문의가 있었어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시작했어요"

대학원을 졸업하고 큐레이터가 된 그는 그 시절이 즐거웠다고 회상한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집안의 경제적 어려움과 아픈 몸 때문에 일을 그만두고 어머니와 게스트하우스를 열었다. 2013년 2월의 일이다.

"곱게 자란 내가 건물을 찾고, 사고, 고치고 또 게스트하우스를 오픈하고 난 뒤에 밀려드는 손님과 그에 따른 각종 부수적인 일들로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어요"

홍 대표는 이 '복잡한' 시기에 자아를 잃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자신이 갖고 있던 물건을 하나씩 정리하며, 소박한 차림으로 철학과 미술, 음악 모임에 나가기 시작한다.

에리히 프롬의 책은 이 과정에서 발견했고 그는 이를 통해 자기 생각을 차분히 정리할 수 있었다.

"천연향기 제품 등 제가 만든 물건이 입소문이 나면서 한 사업가로부터 자신의 가게에 입점시키고 싶다는 제안을 받았어요. 그분과 교류하면서 에리히 프롬이라는 철학자를 알게 됐죠"

배우 문숙씨의 저서는 고(故) 이만희 감독에 관한 관심에서 비롯됐다. 그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주민들을 초대해 한국 고전 영화를 상영할 만큼 영화에 조예가 깊다.

"배우생활을 하다가 미국으로 건너간 문 선생님은 그곳에서 삶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치유하는 과정을 책에 기록해 놓았어요. 요가와 자연식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보듬었는데 그 내용이 제 가치관과 잘 맞았습니다"

홍 대표는 문씨의 저서를 통해 식물을 취할 때 그 취하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 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자연에 피해를 주지 않으며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문씨의 생각에 마음 깊이 공감했다.

"좋은 채소는 뿌리째 먹어도 돼요. 채소의 꽁다리는 육수로 우려낸 뒤 퇴비로 사용하면 버릴 것은 아무것도 없죠. 제가 하는 사업이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열매, 향기의 미래

홍 대표는 '수토메 아포테케리'에 어떤 열매가 맺기를 바랄까.

"사람의 삶이 향기로워졌으면 좋겠어요. 너무 추상적인 것 같지만, 향기로도 한 사람의 인생이 조금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연주의'와 '근본주의'라는 가치관이 브랜드에 녹아들어야 하고, 저와 직원들 몸에도 이 가치관이 스며들어야겠지요"

그는 현시대에서 '브랜드'라는 것이 그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가치관과 동떨어질 수 없다고 강조한다. 이익이 제1순위가 되지 않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발달하며 브랜드 가치관과 직원의 생각이 일치하는 지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직원의 생각이 브랜드에 녹아들려면 제품도 직원도 거짓말을 할 수 없어요. 최고의 원료로 만들면서 조바심을 내지 않는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단기적으로 봤을 때는 손해일 것 같지만, 한 번 고객은 절대 떠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제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이런 말을 듣자 그의 사업이 단단해질 것이란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역사를 전공한 사람이 이런 생각을 가질 수 있다는 것에 놀라웠다.

"사업을 하면서 핸디캡으로 생각했던 미술사 전공이 다른 어떤 전공보다 큰 도움이 됐어요. 역사를 공부하면 일정한 주기마다 어떤 현상이 반복되는 것을 보는데 이를 통해 거시적인 시야를 갖게 됐습니다. 아울러 음악과 미술, 철학과 건축 등 틈나는 대로 공부했던 것들이 어느 순간 궤를 같이하며 시너지 효과를 내더라고요"

그는 이를 어떻게 버무리는 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30대 사업가들이 주변에 많이 있지만 기성 사업가처럼 자신의 이익을 공유하는데 인색한 모습을 자주 봤기 때문이다. 인턴 기간 중 시급 1만원을 내건 것도 그의 생각이 반영된 결과다.

다소 이색적인 채용공고로 인해 비판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란 우려에 대해서는 "우리 직원을 뽑는 것을 두고 타인이 가타부타하는 것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며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라면 이같은 채용공고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채용공고를 발표한 지 약 한 달이 흘렀지만 반응은 뜨겁다. 무엇보다 홍 대표와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문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일단은 2명을 뽑을 계획이에요. 제시한 책을 모두 읽은 지원자로부터 한편의 글을 받을 생각이고, 합격한 응시자에 한해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눌 생각입니다. 준비하는 기간 저도 지원자만큼 열정을 갖고 공부할 생각이에요. 양측 모두 이 시간이 남은 인생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기사를 읽고 관심이 생긴 독자라면 책을 꺼내자. 떨어지고 붙는 문제는 다음이다. 수토메 아포테케리의 향기가 사회에 조금씩 스며들기를 기대한다.


ic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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