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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다문화섬③]무인도 표류자로 살아가는 60대 무국적 동포

딸과 함께 귀화한 후 강제추방전력 발각돼 국적 박탈
한·중 모두로부터 외면받아 살길 막막…귀화취소 조치 신중해야

(서울=뉴스1) 김태헌 기자 | 2016-08-27 07:00 송고
편집자주 국내 체류 외국인이 지난 6월 기준으로 200만명을 넘어섰다. 실질적인 다문화 사회로의 진입이다.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의 외국인 노동자 밀집구역은 다문화 시대가 만든 이색지대다. 실재하지만 인정받지 못하는 외딴 섬으로 존재하고 있다. 뉴스1은 1개월간의 '서울의 다문화섬' 관찰 기록을 정리해보았다.
갈림길에 서 있는 조세주(가명)씨..© News1 김태헌 기자
갈림길에 서 있는 조세주(가명)씨..© News1 김태헌 기자
"미안해서 딸 얼굴도 제대로 못 봐요. 대화도 끊긴 지 오래죠".

17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조세주씨(가명·60)가 말했다. 조씨는 자기 때문에 한국에 와서 무국적자 신세가 된 딸에게 미안한 마음 뿐이라고 했다. 말없이 커피잔을 응시하던 조씨는 연거푸 한숨을 쉬었다.
아내, 딸과 함께 사는 조씨는 몇 년째 일을 못하고 있다. 통장은 물론 의료보험 혜택도 받지 못한다. 무국적자 신분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엔 두피에 종양이 생겨 거금 100만원을 내고 제거수술을 받았다. 한 달에 10만원도 벌지 못하던 때다.

◇은행은커녕 병원도 가기 어려운 불법체류 신세

조씨는 2000년 4월 '위명여권'(허위 명의로 된 여권)을 만들어 코리안드림을 안고 한국으로 왔지만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2005년 강제추방 당했다. 이후 어머니가 경남 밀양에서 5촌 외숙부를 찾아 한국 국적을 취득하면서 2007년 2월 다시 입국했고, 2009년 10월 원래 이름으로 귀화신청을 해 딸과 함께 한국국적을 취득했다.

"정말 열심히 살았습니다. 무슨 일이든 하며 돈을 모았죠. 작지만 전셋집도 장만했고 세 식구 함께 행복했습니다."
소박한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2012년 5월 지방의 한 여관에서 청소일을 하던 조씨는 급하게 올라오라는 아내의 연락을 받았다. 출입국관리국에서 한국국적자 부인 신분으로 영주권을 신청한 아내와의 동거여부를 확인하러 온다는 것이었다.

집에 온 관리국 직원들은 갑자기 식사 중이던 조씨를 체포해 '허위 서류로 귀화신청을 했다'며 조사를 벌였다. 결국 귀화신청서를 허위로 작성해 제출한 혐의(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로 기소된 조씨는 법원으로부터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시련은 계속됐다. 자신과 딸이 무국적자가 된 것이다. 2014년 3월 집으로 온 통지서 한 장은 조씨와 조씨 가정을 송두리째 바꿔놨다. "요즘은 건설 일용직을 가도 다 신분증을 확인해요. 말그대로 아무것도 못하게 되버린거죠. 어학연수를 다녀온 뒤 회사에 다니던 딸도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됐어요."

법과 제도는 옳지만, 종종 누군가에게 옳지 않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집행 이후를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2009년 10월 법무부는 조씨의 귀화를 허가했다. /뉴스1 DB.
2009년 10월 법무부는 조씨의 귀화를 허가했다. /뉴스1 DB.
◇한·중 모두로부터 외면…'귀화 취소' 제도 개선은?

한국국적을 잃고 무국적자가 된 조씨는 중국으로도 갈 수 없는 신세다. 귀화를 신청할 때 중국국적을 포기하고 여권도 반납했기 때문. 중국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주한중국 영사관에서 발급되는 여권이 필요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보름이면 나오는 여권이 5개월째 나오지 않고 있다. "영사관 직원이 '네 잘못이 뭔지 아느냐'고 하더군요. 나라를 배신한 죄로 미운털이 박힌 게지요."

조씨는 평범한 삶을 살던 그 때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라고 말한다. "제가 잘못한 건 분명하지만 이런 고통을 겪을 정도로 죽을 죄를 지은 건 아니잖아요. 사람답게 살고 싶을 뿐인데…".

조씨의 사례처럼 귀화허가 취소는 당사자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준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결정에 신중해야 할 뿐 아니라, 다른 처벌 방식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출입국 법률전문가 이민정 변호사는 "과거 입국절차에서 타인명의를 이용했더라도, 귀화허가를 받을 때 진짜 본인 명의를 사용했다면 적어도 국적법 제27조 제1항 제1호의 '귀화허가를 받을 목적으로 신분관계 서류를 위조하거나 변조한 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이를 이유로 한 귀화취소는 부당하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대호의 석동현 변호사는 "현행 귀하허가 취소근거 조항은 명확성이나 과잉금지 측면에서 위헌적 요소가 많고 재량권 일탈 남용이 될 소지가 크다"며 "경우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처벌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독일, 대만 등은 귀화허가를 받은 후 일정기간이 지나거나 문제가 된 범죄행위의 공소시효가 끝난 경우 등에 한해 허가취소가 아닌 다른 방식의 제재를 하고 있다.

"처음부터 국적을 받지 못했으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신청할 땐 아무말 없다 갑자기 문제가 돼 제 인생 뿐 아니라 가정까지 망가졌어요. 하루하루 고통입니다." 갈림길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조씨의 시름이 가실 날은 언제일까.


solidarite4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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