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본문 바로가기 회사정보 바로가기

[이기창의 사족] 브렉시트, 해체의 시한폭탄인가

(서울=뉴스1) 이기창 | 2016-06-27 11:45 송고 | 2016-06-27 11:52 최종수정
© News1

‘민족주의는 상상의 공동체(Imagined Communities)다.’
미국 코넬대 교수를 역임한 베네딕트 앤더슨(1936~2015)의 민족주의에 대한 정의다.(지난해 4월 광주광역시에서 열린 포럼에 참석했던 그는 6개월 뒤 세상을 떠난다.)   

앤더슨은 1983년에 나온 대표저서 ‘상상의 공동체-민족주의의 기원과 전파에 대한 성찰’에서 지난 3세기에 걸쳐 민족주의가 출현하게 된 요인을 유물사관을 분석의 틀로 삼아 규명한다. ‘상상의 공동체’는 국민을 뜻한다. 특정시기에 사람들의 경험을 토대로 구성되고 의미가 부여된 역사적 공동체라는 의미다. 생각이나 마음속에 존재하는 가상의 공간이 아니다.   
그는 민족의 개념이 자본주의 발전과정에서 사실상 ‘발명’된 것이라고 규정한다. 종족, 혈통, 언어, 문화 등이 민족주의 형성의 주요인이라는 기족 학계의 성과를 부정한 것이다. 그의 연구는 1990년대 옛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권 해체와 함께 공산주의 이념의 뒤에 가려져 있던, 이른바 ‘종족민족주의(ethno-nationalism)’의 부활로 다시 조명을 받게 된다.

민족주의보다 협의의 개념인 종족민족주의란 한 국가에서 정치·문화적으로 주도적 영향력을 갖는 종족·문화집단을 중심으로 민족정체성을 재구성해야 한다는 이론이다. 종족민족주의 개념은 ‘역사의 아버지’로 불리는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영국이 지난 23일 브렉시트(Brexit) 국민투표에서 51.9% 대 48.1%로 유럽연합(EU) 탈퇴를 결정함으로써 고립주의 전통으로 돌아갔다. 영국의 선택을 일부 외신은 민족주의보다 종족민족주의의 대두로 해석한다. 서구세계 전반에 걸쳐 극우진영을 중심으로 종족민족주의가 부활하고 있다는 시각이다. 실제로 대중영합적이고 뻔뻔스러운 여러 나라 정치인들이 이 흐름을 타고 권력의 정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 대열에 동참한 정치인으로는 브렉시트를 이끈 보수당의 전 런던시장 보리스 존슨, 미국 공화당의 사실상 대통령후보 도널드 트럼프, 오스트리아의 극우진영 자유당 대표 노르베르트 호퍼가 있다. 헝가리의 우파연합정당 요빅도 마찬가지다. 집권 가능성이 높다는 공통점이 있다.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건축가이자 풍자작가 칼 샤로는 미국 월간지 ‘애틀랜틱’의 24일자 온라인판에 기고한 ‘브렉시트: 고대 종족 간 증오 이야기(Brexit: A Tale of Ancient Ethnic  Hatreds)’라는 제하의 칼럼을 통해 노르만정복 이전의 원주민 앵글로 색슨족과 노르만족 사이에 내연되어온 갈등을 배경에 깔고 브렉시트를 풍자한다. 영국의 국기 축구를 앞세운 풍자여서 더욱 실감난다. 그의 풍자 전반에는 이제 국제적 화두로 떠오르는 종족민족주의가 흐른다.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자.

11세기 노르만족의 영국정복은 침략자와 원주민 앵글로 색슨족 사이에 깊은 상처와 함께 분열의 씨앗을 잉태했다. 노르만족은 현재의 프랑스인을 지칭한다. 로빈 후드와 아이반호의 전설은 노르만족을 상대로 한 앵글로 색슨족의 투쟁을 그린다. 앵글로 색슨족은 EU를 정치적 통합이 아니라 노르만정복의 연장으로 보고 있다. (유럽통합이 프랑스의 주도로 이뤄졌으니까.)      

영국인의 이런 의식은 축구영역에서 가장 치열하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리버풀, 뉴캐슬과 같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앵글로 색슨계열 구단은 수백만명에 달하는 열성팬을 확보하고 있다. 이들은 자기 고장의 팀에 광적인 지지를 보낸다. 첼시, 토트넘 홋스퍼, 아스널로 대표되는 노르만족계열 클럽도 마찬가지다. 

아스널은 프리미어리그서 여러 번 우승했다. 하지만 아스널은 앵글로 색슨족의 끊임없는 경멸의 대상이 되고 있다. 아스널의 번지르르하고 짜증나게 만드는(마치 프랑스의 아트사커를 연상시키는) 플레이 때문인데, 이러한 스타일은 축구에서 모든 미학적 고려사항을 버리고 오로지 남성적이고 강력한 앵글로 색슨식의 경기방식과 대조를 이룬다. 

EU 잔류진영의 지도자 다수는 노르만족 혈통을 갖고 있다. 탈퇴진영은 앵글로 색슨 혈통의 지도자들이 많다. 명사 가운데 예외는 독립당대표 나이젤 패라지로 그는 노르만 혈통이다. 패라지는 공공연하게 맥주를 마시고 포도주와 커피를 더 좋아하는 노르만족에 눈살을 찌푸리는 습관으로 인해 스스로 앵글로 색슨족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국민투표를 앞두고 이어진 각종 토론회에서 영국문화에 잠재된 이러한 갈등경계선을 해설자들이 놓칠 리 없다. 

칼 샤로의 결론은 무엇일까. 

해법은 EU 잔류파와 탈퇴파로 영국을 양분하는 길밖에 없다. ‘리비아(Leavia, 탈퇴파)’와 ‘리매니아(Remania, 잔류파)’의 경계가 런던을 가로지르게 되고 유엔 관할의 비무장지대(DMZ)가 설정되리라. 양측 경계를 따라 유엔평화유지군이 배치된다. 어느 쪽이든 기분이 사나워지기는 마찬가지다. 그게 바로 식민지 국경들의 속성이니까. 유감스럽게도 EU잔류를 희망하는 칼 샤로의 바람은 실현되지 못했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로 구성된 영국의 해체를 재촉하는 시한폭탄이 째깍거리고 있다. 지구촌 곳곳에 종족민족주의, 신민족주의가 발호할 지역이 산재해 있다. 그야말로 불확실성의 시대다.        <편집위원>

    

    

    


klee@

이런 일&저런 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