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십리에 본점을 둔 한우전문점 D식당의 메인 메뉴는 등심 구이다. 1인분 200g에 3만8500원을 받는다. 식후 된장죽이나 깍두기 볶음밥을 추가하면 1인분에 3000원을 더 받는다. 맥주나 소주를 곁들이면 4000~5000원씩 더 내야 한다. 1인당 5만원은 금세 넘는다.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2인이 가서 1인분만 먹고 와야 할 지경이다.
김영란법은 청탁과 관련없더라도 공무원·교사·언론인 등 특정 직업군에게 3만원 이상의 식사와 5만원 이상의 선물, 10만원 이상의 경조사비를 금지했다. 3만원에 대한 근거는 딱히 없다. 사회 통념상 이 정도면 된다는 식이다. 엄밀히 따지면 2만9000원짜리 식사는 합법이고 3만1000원짜리 식사는 불법이다.김영란법에 적용이 되는 인원은 약 300만명에 달한다. 또 배우자와 가족까지 대상으로 치면 더 많은 인원이 김영란법 적용 대상이 된다. 한식당에서 식사하며 소주를 겸하면 모두 잠재적 범법자가 된다.
김영란법의 이같은 획일적인 비용 상한선은 보이지 않는 부작용을 양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많다. 영수증을 쪼개거나 인원수를 늘리는 등 각종 편법이 기승을 부릴 수 있다는 것이다.
3명이 10만원어치 식사를 했다면 4명이 식사했다고 인원수를 늘리면 된다. 영수증을 두개로 쪼개서 인당 식사비 금액을 낮추는 것도 방법이다. 접대자리에서 각자 계산한 뒤 접대자가 현금으로 비용을 되돌려 주는 방안도 예상해볼 수 있다. 선물의 경우 현물을 보내지 않고 인편으로 고가의 상품권을 직접 전달하는 방법을 쓸 수도 있다. 회사 상품권 출납장부에는 체육대회, 창립기념일 등으로 용처를 피해갈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골프의 경우 본인의 이름이 아닌 가명을 쓸 수도 있다.
그러나 식사비의 김영란법의 위법 여부를 일일이 잡아 내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이것 또한 편법을 부추기는 바탕이 될 가능성이 적지않다.
기업들은 김영란법 시행에 앞서 한껏 몸을 사리고 있다. 한 대기업 대관 담당은 10월 이후론 아예 골프 약속을 잡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인당 비용이 많이들어가는 골프약속은 물론 식사자리도 꺼린다.
김영란법 시행령을 통해 정해진 식사비 및 선물값은 한번 정해지면 물가에 상관없이 고정화될 가능성도 적지않다. 시간이 지날수록 각종 편법이 더 기승을 부릴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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