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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길의 영화읽기]사도-활과 화살

(울산=뉴스1) 이상길 기자 | 2015-09-26 09:00 송고
 
 

'활'과 '화살'의 관계란 게 그렇다. 활이 먼저고 화살은 다음이다. 활에 의해 화살은 멀리까지 날아갈 수 있다. 화살은 활의 존재로 인해 비로소 의미를 부여받는다.
궁수에 의해 활시위가 당겨지면 화살은 주로 과녁을 겨냥한다. 활이 과녁 밖을 겨냥할 리는 잘 없다. 활의 입장에서 과녁을 벗어난 화살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살의 입장에서 과녁은 장애물일 수 있다. 좀 더 멀리 날아가고 싶지만 과녁으로 인해 화살은 멈출 수밖에 없다.

화살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 과녁에 꽂히고 싶은지, 아님 허공으로 멀리 날아가고 싶은지를.

과녁 한 가운데 정확히 꽂혀 활에게서 칭찬을 듣고 싶은 화살도 있겠지만 허공을 가르며 자유롭게 좀 더 멀리 날아가고 싶은 화살도 분명 있지 않을까.
 
 

<사도>에서 영조(송강호)의 아들 사도(유아인)가 자신의 아들로 훗날 정조가 될 어린 세손(이효제) 앞에서 활시위를 당긴다.
아버지 영조와는 이미 틀어질 대로 틀어진 그는 세손에게 주상(영조)과 함께 선왕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종묘를 찾았는지 물은 뒤 과녁을 겨냥한다.

하지만 잠시 후 그는 생각을 바꿔 화살을 과녁 대신 허공에 겨냥한 뒤 멀리 쏘아 올린다. 이내 사도가 자신의 아들인 세손에게 말한다.

"허공으로 날아간 저 화살은 얼마나 떳떳하더냐."

활과 화살의 관계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와 닮았다. 영조에게 사도세자는 화살이었다. 마찬가지로 사도세자에게도 세손, 즉 정조는 화살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영조는 사도세자라는 화살을 과녁에 겨냥했다. 그것도 과녁 정중앙을 노렸다. 첫 아들이었던 효장세자가 일찍 세상을 뜨면서 그가 왕위를 물려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영조는 한 순간의 흐트러짐도 용납하지 않고 매우 엄중히 과녁을 겨냥했다.

하지만 사도세자는 과녁에 꽂히길 원하는 화살이 아니었다. 그는 허공으로 자유롭게 날아가고 싶어 했다.

영조와 사도세자의 비극은 거기서 시작됐다. 얼마 후 영조는 자신에 대한 반감으로 엉망진창이 된 아들 사도를 뒤주에 가둬 죽여 버린다.
 
 

이준익 감독에 의해 새롭게 태어난 영조와 사도세자의 이야기는 시대를 초월한다.

그랬다. <사도>에서 영조와 사도세자의 이야기는 더 이상 조선 중기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비극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는 둘만의 이야기를 세상 모든 부모와 자식의 이야기로 만들어 버린다.

뒤주에 갇혀 죽는 것만이 꼭 죽음인가. 자식의 의지와는 무관한 부모의 강압적인 방향설정으로 영혼이 죽어가는 자식들은 지금도 비일비재하지 않던가.  

그렇다고 <사도>가 영조보다 사도세자를 더 두둔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영조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쉬이 공감하고 말 것이다.

결국 <사도>는 영조와 사도세자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좀 더 깊이 있게 다루려는 것 같다.

그것은 넓게 보면 조물주와 피조물의 관계 같은 것이기도 하다.  
 
 

조물주와 피조물의 관계도 냉정하게 따지면 권리와 의무의 관계로 요약될 수 있다. 조물주는 피조물을 있게 했기 때문에 권리와 함께 의무도 동시에 갖는다.

부모에게 자식은 분명 축복이지만 자식이 고통을 받을 때는 그를 세상에 있게 했다는 원죄를 짊어지게 된다. 축복이 권리라면 원죄는 의무 같은 것이다.  자식의 입장에서는 권리와 의무의 위치가 바뀐다.

자신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부모로부터 대가없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갖는 대신 부모를 기쁘게 해 드려야 한다는 의무도 부여받는다. 어느 쪽이든 부모가 자신을 있게 했기 때문이다.  

재수 없게 권리와 의무라고 규정했지만 아시다시피 본질은 '사랑'이다. 그리고 그 사랑은 너무 커서 비정상적이다.

심지어 선과 악도 쉽게 초월한다. 부모의 부당함에 자식이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또 자식의 부당함을 부모는 오히려 보호하려 든다.

자식이 살인을 저질러도 부모는 자식 편을 들기 마련이다. 비정상적으로 큰 사랑 때문이다.

뭐라 해도 결국 활은 화살을, 화살은 활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둘은 그런 운명으로 묶여 있는 한 팀이다. 때론 사랑해서 밉고 미워서 사랑한다. 그렇게 역설적이다.    

<사도>에서 영조도 뒤주에 갇힌 아들의 숨이 멎은 것을 확인한 뒤 궁중악사들에게 개선가를 연주하라고 지시한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눈물이 그득하다.

마치 축복과 원죄 사이를 오가는 듯한 그의 모습은 몹시도 무겁고 애달프지만 찬란하다.

그렇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애시 당초 기쁨도 슬픔도 아니다. 어느 쪽이든 그저 찬란할 따름이다.

16일 개봉. 러닝타임 125분.

자료협조: 롯데시네마 울산관


lucas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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