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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길의 영화읽기]암살-독립군, 기회주의를 겨냥하다

(울산=뉴스1) 이상길 기자 | 2015-08-08 09:00 송고
 

<암살>의 끝부분에서 과거 독립군이었던 안옥윤(전지현)이 변절자 염석진(이정재)을 찾아낸 뒤 그에게 총구를 겨누면서 "왜 그랬냐"고 묻는다.

석진도 한때 독립군이었지만 그는 일제의 고문을 피해 살아남은 뒤 친일파로 변절한 인물이었다. 이후 그는 독립군에 잠입해 일본제국주의를 위해 일하면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을 사지로 내몰았다.

그러한 친일 행적에도 불구하고 그는 해방 후 법의 심판을 교묘하게 피해 오히려 호위호식하고 있었고 그것을 심판하기 위해 옥윤은 지금 그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다.

잠시 후 석진은 살기 위해 발버둥 치면서 옥윤의 질문에 답한다.

"몰랐으니까! 해방될 줄 몰랐으니까! 알았으면 그랬겠나!"

 

뜻밖의 대사였다. 동시에 <암살>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기도 했다. 한 결 같이 독립군으로 남았던 옥윤의 질문에 내가 예상했던 변절자 석진의 대답은 "살기위해서 그랬다!"는 정도였다.

하지만 최동훈 감독은 석진의 그 같은 대답을 통해 과거형의 시점을 현재형으로 바꿔버린다.

그랬다. 최동훈 감독은 <암살>을 통해 잊혀 져서는 안 될 일제강점기 하의 독립운동사를 넘어 현재도 우리 사회에 득실되고 있는 '기회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진정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사실 석진의 예상 밖의 대답에는 나름 깊은 의미가 있다.

그의 말인 즉은 일본제국주의가 그렇게 허망하게 패망할 줄 알았다면 자신이 왜 일본의 앞잡이가 됐겠냐는 뜻으로 조금 깊이 들어가면 자신도 일본이 좋아서 그런 건 아니라는 의미까지 담고 있다. 맞는 말이다.

당시 친일파들 중 일본이 진심으로 좋아서 그랬던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저 석진처럼 눈앞의 이익과 안위를 위해 친일파 행세를 하지 않았겠나.

실제로 일본이 패망해 한반도에서 물러나자 석진은 곧바로 독립투사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현실에서도 해방 이후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다.

따라서 <암살>의 끝부분에서 독립군 옥윤의 총구가 겨누었던 것은 석진의 친일파 행적을 넘어 넓게는 지금도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는 기회주의까지 포함하는 거라 볼 수 있지 않겠는가.

 

<암살>뿐 아니라 일제강점기 하 독립운동사를 생각할 때 현재를 살아가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스스로에게 반드시 한 가지 질문을 던지게 된다.

바로 ‘그 시절에 태어났으면 나도 과연 독립운동을 할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이다. 분명 쉽게 말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국가적으로 힘들었던 그 시절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는 스스로 선택을 해야 한다. 

영화 속에서도 나오지만 그 선택은 세 가지로 나눠진다.

첫 번째는 영화 속 강인국(이경영)이란 인물로 대표되는 열혈 친일파다. 그 시절 친일은 출세를 위한 지름길이었다.

일본에 충성하면서 그들과의 인맥을 이용하면 당시 조선의 이권사업을 쉽게 챙겨 부자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 속 강인국이 그러했고, 실제로도 지금 우리나라 기업 중 그렇게 성장한 기업들이 상당하다. 그렇게 기회주의자들에게 일제강점기는 기회의 시대가 될 수 있다.  

 

두 번째는 영화 속 옥윤처럼 친일파들과 대칭점에 선 독립투사로 살아가는 것이다. 일본에 의해 언제 잡혀 죽을지 모르고 때론 모진 고문까지 견뎌야 하는 고달픈 길이다.

그들의 삶은 해방 이후에도 고달팠다. 영화에서도 나오지만 반민특위의 친일파 청산작업은 당시 권력의 비호로 실패하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영화 속에서는 두드러지지 않는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이다. 열혈 친일파는 아니지만 그저 일본이 시키는 대로 하면서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이 가장 많을 것이다.

하지만 최동훈 감독은 <암살>을 통해 적어도 영화 속 ‘강인국’처럼 열혈 친일행각은 자제해줄 것을 충고한다.

물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아주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변절자 염석진의 뜻밖의 대답을 통해 좀 더 멀리 내다보라고 조언한다. 그것은 현재의 기회주의자들에 대한 조언이기도 하다.

 
몇 달 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버스를 탔는데 내가 앉은 자리 건너편 빈자리 바닥에 장지갑이 하나 떨어져 있는 걸 발견했다.

버스 안은 한산했고 맨 뒷자리에 몇 명만이 앉아 있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건너편 자리로 이동해 그 지갑을 주워 안을 살폈다.

지갑에는 만 원짜리 지폐가 두둑이 쌓여있었다. 순간 뒷자리에 앉은 사람의 눈을 의식한 나는 지갑을 들고 곧바로 버스기사에게 다가가 지갑을 찾아줄 것을 부탁했다.

버스기사는 “손님이 찾아주라”고 말했지만 “곧 내려야 한다”며 기사에게 지갑을 넘겼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버스에서 내렸다.

그런데 그 때부터 갑자기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들기 시작했다.

버스기사가 찾아주지 않고 꿀꺽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스스로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하지만 그건 버스기사를 무작정 믿은 것에 대한 게 아니었다. 그건 거액의 현금을 챙길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놓친 것에 대한 후회였다.

 

뭘 그리 착하게 살았다고. 주머니 사정도 그다지 좋지 않은 마당에 공돈이 생길 수 있는 기회를 알지도 못하는 버스기사에게 줘 버린 게 억울했던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드니 건너편으로 자리를 옮긴 뒤 뒷자리에 앉은 사람 몰래 지갑을 줍는 스킬도 떠올랐고, 버스기사가 한 차례 만류했을 때 “내가 찾아주겠다”며 그냥 받고 말아버릴 걸 하는 후회도 들었다. 그날 하루 종일 그랬다.

그런데 며칠 뒤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 만약 내가 그걸 가졌으면 공돈이 생겨 좋았겠지만 다 쓰고 나면 후회하지 않을까라는 것. 아니, 분명히 후회했을 것이다.

돈은 분명 내 손에서 사라지고 말 것이고 남는 건 내 양심에 가해진 상처뿐일 것이다. 그건 평생 간다. 그렇게 며칠 만에야 나는 뒷사람의 눈이 무서워 순간적으로 했던 내 행동이 잘한 짓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암살>을 보고 난 후 몇 달 전 버스 안에서의 일이 떠오른 건 나는 그 때 내 안의 기회주의와 싸웠기 때문이다. 기회주의에 내맡긴 이익은 짧지만 양심이 가져다주는 이익은 훨씬 길지 않을까.

사실은 친일파보다 독립군이 더 똑똑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7월22일 개봉. 러닝타임 139분.

자료협조: 롯데시네마 울산관




lucas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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