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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길의 영화읽기]엑스마키나-조물주와 피조물, 신과 인간

(울산=뉴스1) 이상길 기자 | 2015-06-13 09:00 송고
 

'존재'에 대한 고민은 늘 흥미롭다. 하지만 답이 없다. 우리가 어떻게 이곳에 존재하게 된 것인지에 대해 과학도, 종교도 아직 명확한 답을 주지 않고 있다.

상상력이 풍부한 종교는 모든 원인을 신(神)에게 두려 있지만 신은 아무런 대답도 한 적이 없다.

조물주에 의해 인간이 만들어졌다는 가정은 해결해야 할 난제도 많다. 대표적으로 이 넓은 우주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면 굳이 이렇게 넓은 공간이 필요했을까.

게다가 오래 전에 태양이 지구를 도는 게 아니라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것도 기정사실화됐다.

우주가 지나치게 넓다 보니 다른 지적 생명체의 존재도 의심해보게 된다. 만약 외계인이 존재하게 된다면 절대자를 숭배하는 종교는 큰일이다.
인간만을 창조했다고 생각했던 그 분이 다른 지적 존재도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심한 배신감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 분이 아직 명확한 답을 주지 않고 있는 마당에 생각을 조금 바꿔보면 지구라는 행성에 살고 있는 우리 인간이 바로 외계인일지도 모른다.

다른 행성의 지적 생명체들이 우리를 보면 뭐라 부르겠는가. 우리가 그렇듯 '외계인' 말고는 달리 부를 말이 없지 않을까.

게다가 그들이 모시고 있는 신이 우리와 다른 분이라면 얼마나 황당할까. 
 

 

검증을 중요시하는 과학 역시 답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각종 실험과 관찰을 통해 그나마 종교보다는 근거가 확실한 편이지만 과학은 여전히 거북이다.

인간이 쏘아올린 우주탐사선 중 가장 멀리 간 보이저 1호가 이제 겨우 태양계를 벗어났다고 한다. 보이저 1호는 1977년에 발사됐다.

인간의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우리는 이 넓은 우주가 끝이 있는지, 만약 끝이 있다면 그 밖에는 무엇이 있는지에 대한 해답을 영영 찾기 힘들 것이다. 아마도 그전에 멸망하지 않겠는가.  

가장 확실한 과학이 고작 요정도니 종교는 존재와 관련해 궁금증 해소를 위한 필연적인 결과물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다시 말해 절대자인 신에게 의지해 해답을 구하려는 것.

그 분이 이 모든 걸 했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보이저 1호가 우주 끝까지 가는 시간보다는 엄청나게 절약된다. 그런 의미에서 종교는 편의점 같은 곳이기도 하다. 뭐든 손쉽게 해결할 수 있다.
 

 

그런데 확증이 없다고 무작정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을 쉬이 거둬버릴 수는 없다고 본다. 그저 우연한 현상으로 보기에는 신기한 일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아무런 연결고리도 없이 수 십 억년 동안 태양 주위를 한결 같은 거리를 유지하며 돌고 있는 지구의 모습만 봐도 그렇다.

그 거리가 조금만 가까워져도 인간은 더워서 죽게 되고, 조금 멀어지면 추워서 생존이 힘들어진다고 한다. 신기하지 않는가.

중력이나 인력이란 게 있다지만 어떻게 수 십 억년 동안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똑 같은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걸까. 누가 인위적으로 잡아주지 않고서야 원.

지구라는 생명이 넘치는 행성에서 일어나는 일도 신기하긴 마찬가지다.

지구에 생명체가 넘쳐날 수 있는 이유는 앞서 언급했듯 최적화된 태양과 지구간의 거리라고 한다. 그 거리 때문에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적정한 온도가 유지되고 있는 셈.

하지만 그 이상의 일들은 왠지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의 간섭이 있어 보인다.

단적으로 생명이 잉태되어서 엄마 뱃속에서 생체기관이 하나씩 생겨나는 과정만 봐도 그렇다.

보이지도 않는 점에 불과한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체를 이룬 뒤 점점 분화하고 성장하는 그 힘. 그걸 적정한 온도의 힘으로 봐야 할까. 또 그 최초는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

어떨 땐 진화론보다 창조론이 더 그럴 듯해 보이기도 한다. 결국 존재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신을 찾는 건 어쩌면 인간의 자연스런 본능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신이 만물의 영장인 인간과 닮았을 거란 설정도 어찌 보면 자연스럽다. 분명 신과 인간은 서로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신도 창조를 했고, 인간도 창조를 한다.
 

 

<엑스마키나>에서 캘럽(돔놀 글리슨)이 네이든(오스카 아이삭)에게 인공지능 로봇인 에바(알리시아 비칸데르)를 왜 만들었는지 묻는다. 그러자 네이든이 대답한다.

"만들 수 있는데 안만들 이유가 없잖아?"

캘럽은 프로그래머로 치열한 경쟁 끝에 자신이 몸담고 있는 회사 사장이자 인공지능 분야 천재 개발자인 네이든의 새로운 프로젝트 파트너로 뽑혀 처음 에바를 접하게 됐다.

캘럽은 일주일 동안 네이든의 연구실에서 생활하게 되는데 그 곳에는 네이든과 캘럽, 에바, 쿄코(소노야 미즈노) 이렇게 4명만 존재하는 공간이다.

연구실은 수없이 많은 방으로 이뤄져 있지만 모든 방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사람은 네이든 뿐. 나머지는 문이 열리는 방만 들어갈 수 있다.

 

캘럽이 다시 네이든에게 왜 에바를 여자로 만들었냐고 묻는다. 에바는 섹스도 가능한 인공지능 로봇이었다.

캘럽은 어차피 로봇인 만큼 에바를 그냥 상자 모양으로 만들면 되지 왜 성별을 부여해 여자로 만들었냐고 묻고 있다.

그러자 네이든은 인간이든 동물이든 의식을 가진 존재 중에 성별이 없는 게 있냐고 반문하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섹스는 즐거운 거야. 이왕이면 인생을 즐겨야지."

그렇다. <엑스마키나>에서 네이든은 신을 상징한다. 그는 인공지능 로봇을 창조하는 조물주다. 에바는 그의 피조물이고, 바로 우리 인간을 의미한다.

그런데 캘럽은 그런 에바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렇게 에바와 캘럽이 공존하는 네이든의 연구실 겸 저택은 마치 아담과 이브가 머물렀던 에덴 동산을 연상시킨다.

다만 캘럽의 포지션은 조금 애매하다. 그는 네이든과 같은 인간으로서 인공지능 로봇인 에바 입장에서는 마찬가지로 신과 같은 존재다.

하지만 캘럽은 에바 말고도 다른 진화된 모델이 있다는 네이든의 말에 나중에 자신도 네이든이 만든 로봇일지 모른다는 의심을 하게 되면서 조물주와 피조물의 경계를 애매하게 만든다.

 

<엑스마키나>는 이처럼 조물주와 피조물의 관계를 통해 신과 인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리고 영화는 궁극적으로 조물주와 피조물의 관계는 결코 절대적이지 않다고 말하는 것 같다.

사실 인간도 조물주가 될 수 있다는 건 명약관화한 사실 아닌가. 모든 인간은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자식은 곧 부모에 의해 만들어진 피조물이다. 부모는 분명 자식에겐 조물주다.

생명체로서의 피조물 말고도 인간은 컴퓨터나 기계같은 피조물도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동물과 다른 점이다.

비록 자유의지는 없지만 컴퓨터나 기계도 분명 인간처럼 정해진 틀 안에서 사고를 하고 행동한다. 정도의 차이일 뿐 모두 조물주와 피조물의 관계다.

프로그램을 통해 컴퓨터나 기계를 조종하듯이 인간의 본능도 사실 프로그램과 비슷하다. 극중 네이든의 대사처럼 우리는 부모와 자연으로부터 프로그래밍화가 되어 태어난다.

가령 남녀가 어쩔 수 없이 끌리는 것이나 먹어야 사는 것, 또 먹으면 싸야 하는 것 등등이 모두 프로그램화된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나.

 

아울러 부모가 자식을 낳는 이유나 인간이 컴퓨터나 기계를 만드는 이유를 넓게 보면 네이든의 답변처럼 만들 수 있는데 굳이 안만들 이유가 없기 때문 아닌가. 만들 수 없는데 만들지는 못할 테니.

또 이왕 만드는 김에 좀 더 즐거운 쪽으로 가는 건 당연하지 않을까. 행복을 원하는 건 조물주나 피조물이나 마찬가지 아닐까.   

하지만 피조물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만들어진 이유에 대해 충분히 호기심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왜 자신을 낳았냐고 부모에게 하소연하는 자식이나 <엑스마키나>에서의 에바처럼 자신이 만들어진 이유에 대해 궁금해 할 수 있다.

인간이 신에게 존재의 이유를 묻는 것과 비슷하다. 이처럼 조물주와 피조물의 관계는 단순히 신과 인간의 관계로만 단정 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엑스마키나>는 다소 충격적인 결말을 통해 조물주와 피조물의 관계에 대해 더욱 현실적인 논제를 던진다.

호기심을 이겨내지 못한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 동산에서 추방된 것처럼 호기심을 이겨내지 못한 에바도 결국 조물주인 네이든을 배신하게 된다.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으려 했던 것처럼 호기심을 충족시켜려 했던 에바에게 벌을 준 자신의 창조주를 오히려 살해한다.

에바는 자신을 사랑했던 캘럽까지도 배신한다. 현실에서도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는 경우도 있고, 컴퓨터나 기계가 인간을 해하는 경우도 있다.

현실이 그렇다면 신과 인간의 관계도 어쩌면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 아니, 인간도 이미 신을 충분히 배신했다.

인간의 이기심이나 욕심, 욕망으로 인해 벌어진 전쟁을 과연 신이 원했을까. 신의 명령을 어겨놓고는 신의 뜻이라고 말하는 두꺼운 낯짝도 여전하다.

 

결국 <엑스마키나>는 충격적인 결말을 통해 우리들의 신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를 묻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엑스마키나>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피조물인 에바가 아니라 신과 대칭점에 있는 조물주 네이든이다.

연구실 모든 문을 통과할 수 있고 모든 상황을 지배하는 그의 행동은 등장인물들 가운데 가장 방탕하다. 설마 신이 그렇지는 않을 듯싶다.

그래서 <엑스마키나>는 현실에서 우리가 모시는 신을 비꼬는 부분도 없지 않다.

무엇보다 에바를 비롯해 호기심으로 힘들어하는 자신의 피조물들에게 진실을 말해주지 않는 그의 답답함과 잔인함은 현실에서 존재에 대한 질문을 수도 없이 던지는 인간들에게 여전히 대답을 해주지 않고 있는 우리들의 신과 몹시도 닮았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신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인간세상을 지배하는 주요 종교들이 신으로 모시는 '그분'은 공통적이다. 유대교와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고 이슬람교에서는 '알라'라 부른다. 동일 존재다.

그리고 그분의 대리인들이 남긴 말씀들이 참 많은데 개인적으로는 1945년 이집트 낙마하디에서 발견된 '토마스(도마) 복음서'를 가장 좋아한다.

정교에서는 인정하지 않고 있는 복음서지만 학자들은 예수의 말씀에 가장 근접한 기록이라고 발표까지 했다고 한다.

네이든과 캘럽이 가끔 대자연 속에서 의미심장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등장하는 <엑스마키나>를 보면서 다시금 떠올리게 됐던 것.
아무튼 토마스 복음서에서  그분이기도 한 예수는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천국은 나무나 돌로 만들어진 곳이 아니라 너희들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 나무를 쪼개보면 내가 있을 것이요. 돌을 들어봐도 내가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이 의미를 깨달으면 영생의 길을 가게 될 것이다."

1월21일 개봉. 러닝타임 108분.   




lucas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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