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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길의 영화읽기]매드맥스:분노의 도로-누가 세상을 망치나?

(울산=뉴스1) 이상길 기자 | 2015-05-23 09:00 송고
 
지금 이대로라면 인류의 미래는 분명 밝은 유토피아보다는 암울한 디스토피아에 더 가깝지 않을까 싶다. 늘 그래왔지만 세상은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전체적인 풍경을 본다면 세상은 여전히 엉망진창이다.

인간에 의한 자연파괴는 계속되고 있고, 국가 간의 전쟁도 여전하다. 자원고갈에 따른 대체에너지 개발은 이제 인류의 당면 과제다.
자본주의가 고도화되면서 불평등 문제는 더욱 심각해져가고 있다. 지금 이 지구촌은 전 세계 1%의 사람이 40%의 부를 갖고 있고, 날마다 3만4000여명의 아이들이 가난과 치료할 수 있는 병으로 죽어간다.

전 세계 인구의 50%가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살아간다고 한다.

만약 신(神)이 존재해서 애시 당초 이 지구란 행성을 모든 생명체들이 다 살기 좋은 천국으로 만들려고 작정을 했었다면 그는 실패했다.
그가 가장 공을 들여 창조한 인간이 다 망쳤다. 신의 입장에서 본다면 인간은 정말이지 미친 존재다. 

 
때문에 <매드맥스>의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는 막연한 상상이 아니다. 다시 말해 충분히 현실성 있는 이야기다.

미친 인간들에 의해 실제로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핵무기가 사용됐을 때 핵전쟁 이후 인류의 삶을 한번 생각해보라.

그나마 생존한 인류는 영화에서처럼 방사능에 무작위로 노출돼 대부분이 흉측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을 테고, 방사능 오염으로 인한 식량난은 물론 먹을 수 있는 물이 귀해질 게 뻔하다.

늘 그래왔듯 그 때도 석유를 놓고 사활을 건 쟁탈전이 벌어질 것이다. 무법천지의 세상에서 무기는 당연히 절대 권력의 수단이 될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 같은 일들은 핵전쟁 이후에나 일어날 수 있는 것들일까? 다시 말해 지금은 그렇지 않을까?

이쯤에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조지 밀러’ 감독이 30년 만에 다시 내놓은 <매드맥스:분노의 도로>는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물론 현재의 이야기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다.

하지만 나쁜 일에 대한 가능성은 가끔 현실에 대한 비판을 내포하고 있고, 앞서 말했듯 세상은 뭔가 크게 잘못돼 왔다.

이미 미친 세상이다. 결국 <매드맥스:분노의 도로>는 단순한 액션영화가 아니다. 화려한 자동차 액션 뒤로 송곳같이 날카로운 현실비판의식이 담겨져 있다.

아울러 그러한 비판의식은 영화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이 질문에 축약돼 있다.

"누가 세상을 망쳤지?"

하지만 영화 밖 현실세상으로 눈을 돌리면 아직 인간세상이 망한 건 아니니 “누가 세상을 망치나?”라는 현재형으로 질문을 바꿀 필요도 있다.

 
사실 <매드맥스:분노의 도로>의 배경이 되는 미래 어느 시점의 공간에는 세상을 망친 것들이 주로 등장한다.

핵전쟁 이후의 22세기. 그곳은 삭막한 사막이었고, 핵전쟁 속에서도 살아남은 소수의 인간들이 역시나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자연재해가 아닌 이상 예나 지금이나 추후에나 세상을 망칠 근본적인 장본인은 언제나 인간일 것이다. 그건 현실세상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렇다면 인간의 무엇이 과연 세상을 망치게 만들고 있을까. 그것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지점이기도 하다. 이제부터 하나씩 짚어보자.

우선 자잘한 것들부터 살펴보자. <매드맥스:분노의 도로>는 등장하는 모든 것들이 혐오스럽기 그지없다.

온 몸에 하얀 분탕질을 하거나 방사능에 오염돼 흉측한 인간들의 모습부터 시작해 이동수단인 자동차와 오토바이마저 독특함을 넘어 괴기스럽다. 인간들은 마치 다들 악마를 숭배하는 헤비매틀 그룹 같다.

실제로 영화 속에서 독재자 임모탄(휴 기스 번)의 부하 중에는 불을 뿜는 기타를 연주하는 록커가 등장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악마를 숭배하는 일부 인간들이 세상을 망쳤을까라는 질문을 먼저 던져볼 수 있겠다. 원래 악마란 게 죽음이나 파괴를 상징하지 않나.

그것이 완전 구시대적이고 허무맹랑한 영화적인 질문에만 머무를 수 없는 게 실제로 1999년 4월 미국 콜로라도주 컬럼바인 고등학교에서 두 고등학생에 의한 총기 난사사건이 발생했을 때 주된 원인으로 지목받기도 했기 때문이다.

 
당시 에릭과 딜런은 스스로를 '트렌치코트 마피아'라고 칭하며 다니던 컬럼바인 고교에 900여발의 총알을 난사해 13명의 학생과 교사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

그 때 당시 사건 발생의 원인으로 주목받았던 게 '매를릴 맨슨'이라는 록그룹이었다. 두 아이들은 평소 악마임을 자처하면서 신에게 정면으로 도전하는 록그룹 '매를린 맨슨'의 음악을 즐겨 들었고, 그 영향으로 총기난사사고를 저지르게 됐다는 것.

하지만 그 사건을 다룬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볼링 포 컬럼바인>에서도 말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총기사용이 허락된 미국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에 있지 않을까.

더불어 영화에서도 등장하지만 실제 매를린 맨슨은 의외로 굉장히 올바른 사고방식을 가진 록커였다.

그렇다면 좀 더 자잘한 걸로 영화 속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폭주족은 어떨까?

<매드맥스:분노의 도로>가 지닌 가장 큰 매력인 자동차나 오토바이 질주신은 현실의 폭주족들을 쉽게 연상케 한다. 폭주족이 위험하고 혐오스러운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과연 세상을 망쳤을까? 왠지 묻는 것 자체가 우습다.

그럼 살인마는 어떨까? 절대권력자 임모탄의 부하 중에는 인육을 먹는 살인자도 있다. 물론 나쁜 놈이긴 하지만 혼자 세상을 망치기에는 역부족이다.

것도 아니면 영화에서 조금 벗어나 우리 정부가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는 성폭력, 가정폭력, 학교폭력, 불량식품 같은 4대악은 어떨까? 에이.

 
그럼 이제부터는 영화 속에도 등장하는 사이즈가 좀 더 큰 것들로 들어가 보자. 아니다. 이쯤에서 그냥 결론부터 말하겠다.

다들 짐작하겠지만 <매드맥스:분노의 도로>에서 세상을 망친 건 인간이 일으킨 ‘전쟁’이다. 핵전쟁으로 인해 세상은 폐허가 된다.

현실에서도 인간이 만약 세상을 망친다면 전쟁이 가장 유력하지 않을까. 전쟁은 인간이 일으킬 수 있는 가장 큰 재앙이다.

핵심은 누가 전쟁을 일으키는가에 있다. 인간 중에서 누굴까? 아니 인간세상의 무엇이 전쟁을 일으킬까라는 질문이 더 맞겠다. 그래봤자 물어 보나마나다. 당연히 ‘권력(權力)’ 아니겠는가.

때문에 우리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절대권력자 임모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독재자인 그는 자기가 가진 것들을 잃지 않기 위해, 혹은 더 많은 것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도 불사한다.

하지만 그건 핵전쟁 전에도 마찬가지 아니였을까. 아울러 현실에서도 히틀러처럼 나쁜 권력자들은 늘 전쟁을 일으켜왔다.

 
경제와 무기는 그들의 수족이다. 역시나 권력의 일종이다.

경제는 희소성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기 마련이고 임모탄은 지하에서 끌어올린 깨끗한 물을 이용해 사람들을 지배한다.

물은 사람들이 충분히 먹고도 남는데 임모탄은 공급량을 인위적으로 조절해 자신에게 복종하게 만든다.

현실에서도 다이아몬드의 경우 희소성을 유지하기 위해 일부러 태워버리거나 일찍이 실용화 단계에 들어섰던 친환경 전기자동차를 힘을 가진 석유업자들의 이익을 위해 모두 폐기처분해버린 미국이란 나라의 현실을 생각하면 영화나 현실이나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궁금하면 <누가 전기자동차를 죽였나?>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찾아보시길. 공교롭게도 그 영화에는 <매드맥스> 원작 시리즈의 주인공이었던 '멜 깁슨'도 등장한다. 

무기는 또 어떤가. 임모탄이 무기를 가졌기 때문에 수적으로 훨씬 우월한데도 사람들은 그를 두려워했다. 현실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가스타운'과 '무기농장'은 현실에서 권력자들이 좌지우지하는 경제와 방위산업을 상징적으로 의미한다.

그것을 가졌기 때문에 나쁜 권력이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드디어 영화나 현실에서 세상을 망치는 장본인의 실체가 밝혀졌지만 <매드맥스:분노의 도로>는 세상을 구원할 존재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무엇일까?

조지 밀러 감독은 우선 영화 속에서 스스로 신(神)인 척 행세하는 임모탄을 통해 '종교'를 지목한다.

사실 모든 종교의 목적이 바로 인간에 대한 구원 아니던가. 그렇다면 종교는 과연 세상을 구원할 수 있을까?

물론 아직은 아니다. 종교가 세상을 구원할 수 있었다면 영화 속에서 핵전쟁은 일어나지 않았겠지. 그건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종교가 세상을 구원할 수 있었다면 1,2차 세계대전이 왜 일어났을까. 왜 아직도 날마다 3만4000여명의 아이들이 가난과 치료할 수 있는 병으로 죽어가는 것일까.

더욱 아이러니한 건 그 신(神)만 믿으면 죽어서 천국 간다는 사람들이 왜 죽음을 코앞에 두고는 살려 달라고 발버둥 칠까. 분명 더 좋은 천국이 기다리고 있는데.

결국 <매드맥스:분노의 도로>는 스스로 신(神)인 척 행세하는 독재자 임모탄의 모습을 통해 종교도 사실은 하나의 권력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인류 초창기 '정교일치(政敎一致)' 사상은 그것에 대한 가장 좋은 근거다. 아무튼 절대자의 뜻과 달리 현실에서는 권력에 더 가깝다면 종교는 결코 세상을 구원할 수 없지 않을까. 

 
종교도 아니라면 무엇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을까. 그 실체를 찾기 위해 이제부터는 영화 속 두 주인공인 맥스(톰 하디)와 퓨리오사(샤를리즈 테론)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괜히 주인공이겠는가.

임모탄의 폭정을 피해 함께 도망자 신세가 된 맥스가 퓨리오사에게 "넌 무엇을 찾고 있지?"라고 묻는다. 그러자 퓨리오사는 아주 짧게 대답한다. "구원"

어릴 적 임모탄에게 납치를 당한 뒤 충성심으로 사령관 자리까지 오른 퓨리오사는 사실은 그의 폭정에 반감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5명에 이르는 임모탄의 여자들을 빼돌려 도망을 치고 있었던 것.

임모탄은 오염된 세상에서 정상적인 아이를 임신할 수 있는 여자들을 통해 자신의 독재체제를 유지하려 했다. 즉, 퓨리오사는 임모탄의 폭정을 끊어 사람들을 구원하려 했던 것.

그런 그녀를 맥스는 죽음을 각오한 자기희생으로 도와 마침내 사람들을 구원하게 된다. 임모탄이 죽자 척박한 땅에 물이 넘쳐났고 사람들은 새 삶을 얻게 된다. 

그렇다. 드디어 나왔다. 조지 밀러 감독은 맥스와 퓨리오사를 통해 '자기희생'이 세상을 구원할 유일한 존재임을 간접적으로 말하고 있다.

영화가 끝을 맺으면서 조지 밀러 감독은 자막을 통해 다음과 같은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희망 없는 삶을 헤매는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위해 최후로 가야할 곳은 어디인가?”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개인적으로 그 물음에 대한 해답은 영화 속에서 맥스 일행의 이동경로에서 찾아야 할 것 같았다.

임모탄의 폭정을 피해 희망을 찾아 도망쳤던 맥스 일행은 임모탄의 본거지인 시타델로 회군한다. 아무리 해매도 녹색의 땅을 찾기 어려워 보였던 것.

하지만 시타델에는 이미 먹을 수 있는 물과 식물들이 조금씩 자라고 있었고 맥스 일행은 죽음을 각오한 채 시타델로 다시 향하게 된다.

이 같은 설정은 더 나은 삶을 위해 뭔가를 새롭게 찾아야 한다기보다 고쳐야 한다는 의미의 해석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무엇을 고쳐야 한다는 것일까. 아마도 그건 영화 속 주인공들이 보여 준 자기희생을 통해 이기심을 이겨내고 ‘이타심’을 가지라는 의미가 아닐까.

나쁜 권력의 실체도 사실은 이기심과 욕심 아니던가. 그래서 이제 마지막으로 영화 속 ‘핸들’에 주목해야 한다.

<매드맥스:분노의 도로>에서 주요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핸들을 하나씩 갖고 있다. 어차피 인생은 ‘드라이브’같은 것이고 그렇다면 핸들은 삶의 방향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기심과 욕심을 이겨내지 못한 채 권력과 이익에 빌붙어 살며 핸들이 고정된 채 살아가는 대다수 인간들에 비해 영화 속에서 맥스와 퓨리오사, 눅스(니콜라스 홀트)는 깨달음을 얻고는 모두 핸들을 꺾어 버린다.

조금 차이는 있지만 그들이 핸들을 꺾었던 공통된 이유는 이기심을 이겨낸 이타심이었다. 그로 인해 세 주인공은 물론 다른 인간들도 함께 구원에 이르게 된다.

피터 조셉 감독의 <시대정신>이란 다큐멘터리 영화를 책으로 옮긴 김종돈씨도 에필로그에서 이런 명언을 남겼다.

“결국엔 타인의 고통에 대한 상상력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14일 개봉. 러닝타임 120분.


lucas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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