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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학교 앞 호텔'에 대한 문체부의 '나홀로 통계'

(서울=뉴스1) 박창욱 기자 | 2015-04-12 18:00 송고
© News1

"술 취한 사람이 가로등에 기대는 것과 같다."
영국의 사상가 앤드루 랭은 통계가 왜곡 이용되는 경우를 이렇게 비유했다.

취객들이 어두운 거리를 밝히는 가로등을 제 몸 가누는 데 이용하는 것처럼,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제멋대로 통계를 사용하는 것을 비판하는 말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11일 배포한 해명자료도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문체부의 이 해명자료는 '학교환경위생 정화위원회(정화위)가 학교 주변에 호텔을 짓도록 막상 허용해줘도 실제 사업화로 이어지는 비율이 저조하다'는 취지의 지난 10일자 본사 보도를 반박하는 내용이다.

문체부는 그러나 통계 기간과 표현만 바꾼 '나홀로 통계'로 별반 달라지지도 않는 사실을 강변하는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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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 보도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정화위가 2011년에서 2015년 2월 사이 학교 주변에 허용한 166건의 호텔건립 계획 가운데 실제 사업으로 실현되거나 추진 중인 경우는 32%인 53건이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정진후 의원(정의당)이 서울시와 서울시교육청에서 제출받은 '서울시내 호텔업 등록현황'과 '사업계획 승인현황' 및 '학교환경위생정화위원회 심의결과' 등을 출처로 했다.

"이미 서울에서만 학교 주변에 정화위의 허락을 받은 113곳의 호텔건립 가능 부지가 있지만, 이후 자금조달이나 구체적인 설계 문제 등으로 인해 지자체의 사업승인을 받지 못하거나 사업화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게 정 의원의 지적이다.

그는 따라서 "정화위 심의절차로 인해 호텔을 짓기 어려우므로 관광진흥법을 개정해 정화위의 심의절차 없이 학교 앞 호텔을 지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정부 측 주장은 "현실과는 다르다"고 비판했다.

문체부는 그러나 통계의 기간을 문제삼았다. "정화위 통과부터 (지방자치단체의) 사업계획 승인까지는 통상 3~9개월 걸린다"며 최근 6개월간인 '2014년 9월부터 지난 2월까지의 정화위 심의건'은 제외하고 따져봐야 한다고 했다.

이 같은 기준에 따라 "2011년부터 2014년 8월까지 정화위 심의를 받아 통과한 호텔건립계획 150건 중 현재까지 사업계획을 승인받은 경우는 75건으로 50%이며, 이들 중 착공되었거나 운영 중인 곳이 56건으로 75%에 달한다"고 해명자료에서 주장했다.

얼핏 보면 문체부가 말하는 '착공됐거나 운영 중인 비율 75%'는 꽤나 높아 보인다. 하지만 이는 정화위의 허용건수가 아니라 그 다음 단계인 지자체의 사업계획 승인건을 기준으로 계산한 사업화 비율이다.

분명 정부는 '정화위의 심의에 따른 불확실성이 호텔 확충에 걸림돌이 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당연히 정화위의 허용건수를 기준으로 한 사업화 비율을 따져봐야 하는 게 타당하다. 하지만 문체부가 제시한 기간으로 계산해도 정화위가 허용한 호텔 건립계획 가운데 사업화가 된 비율은 단 37%(150건 중 56건)에 머문다.

정 의원 측이 계산한 32%와는 그야말로 '도긴 개긴'이다. 사업화가 저조한 건 정 의원측 계산이나 문체부의 기준에 따른 것이나 매한가지라는 얘기다. "그래도 5%는 큰 차이"라는 문체부의 주장은 오죽하면 이렇게까지 말할까 싶을 정도로 억지스럽다. 

문체부는 사업승인을 받은 호텔 가운데 착공 또는 운영 중인 곳이 75%라고 주장했지만 이를 뒤집어 보면 사업승인을 못받은 호텔은 차치하고 사업승인까지 받고 문제가 생긴 곳이 25%에 달한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정말 호텔 확충이 시급한 거라면 이럴 계제가 분명 아니다. 문체부 관계자의 주장처럼 정화위의 심사기준이 자의적이기 때문에 호텔 투자자들을 불안하게 하는 부분이 있다면, 심사기준를 객관적으로 계량화할 수 있는 대안부터 제시해야 하는 게 먼저다. 또 불안해하는 학부모의 마음을 돌릴 보완책도 마련해야 한다.

이에 앞서 문체부 스스로도 "정화위 심의 후 자금 부족·사업계획 변경 등으로 (사업화가) 늦어지는 사례도 상당수 되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인정한 만큼 현재 제도 하에서 호텔 건립을 보다 활성화하기 위한 상세한 추가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이런 근본적인 부분을 애써 외면한 채, 문체부는 '학습권 보장'이라는 분명한 명분이 있는 정화위의 심의절차를 관광진흥법 개정으로 무력화겠다는 의지만을 과도하게 노출시키고 있다. 

관광활성화를 위한 학교 앞 호텔 증축 문제에서 문체부가 반대 측 사회구성원들을 설득하기 위해 진심과 성의를 좀 더 담았으면 한다. 자칫 '행정편의주의' 발상으로 비칠 수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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