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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콴유 리더십, 한국 정치에 주는 교훈은

일부 서방언론 “일당독재 통해 글로벌 자본주의 꽃..모순의 나라”
노사관계, 연금개혁, 영어공용화, 인재등용, 투자유치, 투명한 정부 등 업적

(싱가포르=뉴스1) 윤태형 기자 | 2015-03-29 12:39 송고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 .© AFP=뉴스1 2015.03.23/뉴스1 © News1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 .© AFP=뉴스1 2015.03.23/뉴스1 © News1
고(故) 리콴유 전 총리는 신생 독립국 싱가포르를 반세기 만에 1인당 국민소득 아시아 1위, 세계 8위의 선진국 반열에 올려놓은 '산업화 리더'로 싱가포르 국민 뿐 아니라 전 세계의 존경을 받고 있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가 1990년대 이미 세계 제3위의 정유생산량과 원유거래량을 기록하고, 인구의 76%가 중국인인 나라가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인구 530만명의 소국이 글로벌 금융시장을 유치하는 과정에는 ‘국부(國父) 리콴유’의 비전이 없었다면 모두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싱가포르 국민들은 입을 모은다.
리 전 총리는 동시에 '아시아적 특수성'을 고집하며 노조와 반정부 세력을 탄압하고, 언론을 통제해온 독재자라는 별칭도 얻고 있다. 유교적 가족 중심의 전통을 내세워 '서구적 민주주의'의 도입을 막고, 장기집권을 통해 '부국강병(富國强兵)'을 도모한 인물이라는 평가도 있다.

그래서 일부 서방언론은 싱가포르를 일당독재를 통해 '글로벌 자본주의'의 꽃을 피운 '모순의 나라(nation of contradictory)'로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민주주의와 경제적 부흥은 밀접한 관계가 없다는 '자본주의 역설'이 존재한다는 게 드와이트 퍼킨스 하버드대 교수의 주장이다.

◇불법 파업엔 '강력한 법집행'.."생산성 초과않는 임금인상" 원칙 고수
1965년 말레이연방으로부터 쫓겨나다시피 독립을 한 싱가포르는 1인당 국민소득이 400달러에 불과한 빈국이었다. 중국인이 다수를 차지한 가운데 말레이인, 인도인 등 인구 구성도 다양해 사회통합이 어려운 상황이었고, 다수의 중국인들은 오랜 기간 영국과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으며 중국의 공산화 과정을 지켜보면서, 공산주의 이념에 물들어 있었다.

또한 인도차이나 반도의 공산화 도미노로 안보 또한 위협받고 있는 상황. 접경국인 인도네시아와의 충돌 상황도 항상 내재돼있었고, 불법 노조 파업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리 전 총리는 강력한 '법 집행' 카드로 맞서며, 불법 파업에 단호하게 대처했다. 특히 1966년 일용직 노동자 파업이 발생하자 이를 주동했던 K 수피아 변호사와 14명의 파업 주동자들을 체포하고 파업 노동자에게 재취업신청을 권유했다.

이후 1972년 노사정으로 대표되는 임금협의회를 창설해 "생산성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임금인상을 결정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또한 노조 활동을 생산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노동조합형 기업을 설립했다.

◇리콴유, 종속이론 지배하던 70년대..선진국 투자유치 비전 제시

싱가포르가 1인당 국민소득 5만 달러를 가능케 한 것은 바로 리 전 총리의 ‘친기업형 경제개혁’에 대한 비전이었다.

종속이론, 신식민주의론이 맹위를 떨치던 1970년대 리 전 총리는 대외 개방의 2가지 원칙을 세웠다.

하나는 주변국 보다는 원거리 교역을 통해 산업화를 추진한다는 원칙이고, 또 하나는 당시 제3세계에 속한 싱가포르에 선진국형 교육, 치안, 환경, 투자, 공공서비스, 금융시스템을 도입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안정적인 투자환경 조성을 위해 1970년에 이미 원스톱 시스템을 구축하고, 부패행위조사국을 통해 강력한 부정부패 척결에 나서는 투명성을 제고했다.

또한 투자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창이국제공항, 이스트 코스트 파크웨이를 건설하고, 공중도덕 위반에 대해 사생활 침해와 공권력 남용이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철저한 감시와 처벌을 단행했다.

1973년 오일 쇼크가 발생했을 당시 국내 원유 확보가 시급했지만, 자유로운 수출을 보장함으로써 대외신뢰도를 쌓았다. 이 같은 대외신뢰를 바탕으로 기름 한 방울 나오지 않는 나라가 1990년대 이미 세계 3위의 정유생산량과 원유비축량을 기록하게 됐다.

◇낮은 법인세율.. '다음 세대에 부담 지우지 않는다' 원칙 하에 CPF 연금 제도 운영

또 하나는 낮은 법인세율이다. 싱가포르의 법인세율은 17%로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낮다. 한국의 경우 22%로 싱가포르보다 5% 가량 높다. 싱가포르는 법인세율을 낮게 유지하면서 기업의 투자를 유도하고 조세회피에 대한 철저한 단속과 함께 유인(誘因)을 줄이는 데 노력해왔다.

연금 운용은 '다음 세대에 부담을 지우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우고 철저한 적립식 연금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싱가포르 연금, 의료보험 운영에 있어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제도가 중앙후생기금(CPF·Central Provident Fund)제도다. CPF는 철저하게 적립식으로 운영된다. 근로자들은 의무적으로 월급의 20%를 개인계좌에 납입하고 고용주는 15% 가량을 부담한다.

적립된 금액은 주로 주택마련과 함께 은퇴 후 노후자금으로 사용된다. 이 제도가 성공하기 위해선 물가상승률보다 이자율이 높아야 하기 때문에 싱가포르 정부는 합리적인 재정 운용을 통해 인플레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사회 통합·글로벌화 위한 '영어공용화'..인재유치라면 외국인도

리 전 총리의 가장 극적인 개혁은 영어 공용화이다. 중국인이 4분 3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국가에서 중국어가 아닌 영어를 공용어를 택한 것은 '사회통합'에 대한 고려에서였다. 독립 당시 싱가포르는 민족 구성에 따라 중국어 방언과 말레이어, 힌두어 등 통일된 언어 없이 분열돼 있었다.

리 전 총리는 이 문제를 고심하면서 동남아 '허브'국가로의 비전을 갖고 영어를 공용어로 쓰기로 결정하고, 이를 반대하던 난양대학을 사실상 국영화해 난양공대로 개편하는 과감성을 보였다.

또한 홍콩의 유명 영화사 쇼박스(Shaw Box) 회장인 룬머 쇼를 초대 싱가포르 관광청 장관으로 초빙하는 등 외국 국적의 인재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정책을 펼쳤다. 사자머리에 물고기 꼬리를 한 싱가포르 상징물 머라이언(Merlion)은 그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처럼 투명한 정부, 글로벌 금융시스템 도입, 영어공용화, 해외인재 적극적인 활용은 싱가포르가 2000년대 글로벌 금융허브로 거듭나는 기반을 마련해줬고, 이는 모두 리 전 총리의 미래를 내다보는 비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게 싱가포르 국민들의 생각이다.




birako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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