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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친부에게 14년간 성폭행당한 여성이 남긴 편지

스스로 목숨 끊은 24세 여성 "성폭행, 절대 자책하지 마세요, 나의 잘못이 아닙니다."

(서울=뉴스1) | 2015-03-24 10:48 송고 | 2015-03-25 08:27 최종수정
편집자주 친부로부터 5살 때부터 14년간 성폭행을 당하다 지난해 5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A양이 생전에 'MBC라디오 여성시대'를 통해 10분 동안 밝힌 녹음파일 전문. 서울경찰청 성폭력특별수사대는 친딸 자매를 성폭행한 인면수심의 친부(54)를 검거해 지난 19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자신들과 같은 피해자가 다시 있어서는 안되겠기에 세상에 알려달라'는 피해자와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에 따라 전문을 공개한다.
뉴스1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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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양희은, 강석우님. 저는 올해 24살이 되는 Aㅇㅇ라고 합니다.

    

저에게는 이름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Bㅇㅇ, Bㅇㅇ, Aㅇㅇ. Bㅇㅇ로는 20여년을 살았고 Cㅇㅇ로는 3년을 살았고 Aㅇㅇ로 살게 된지는 채 1달이 되지 않았습니다.

    

제 나이의 여느 또래들은 학생이거나 열심히 일을 하고 있겠지만 저는 지금 스스로를 치료하는 과정 중에 있습니다.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좋을까요. 상담을 3년여 넘게 지속중이지만 제게는 늘 입을 떼는 첫 순간이 어렵습니다. 저는 4살 때부터 16살 무렵까지 친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하며 자라왔습니다. 상담선생님께서는 아버지라는 말을 어려워하는 저에게 '가해자'라는 표현을 써도 된다고 알려주시더라구요.

    

16살이 끝나갈 무렵 부모님의 이혼으로 인해 엄마와 함께 살 수 있게 되면서 다행히도 가해자와는 떨어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당한 성폭행이나 성추행에 대해서는 그 누구에게도 얘기할 수 없었습니다. 스무살 그 날이 되기 전까지는요.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얘기를 가슴에 품고 사는 저에게 하루하루는 버텨내야 할 숙제와 같은 것 이었습니다. 하루를 끝마치고 잠자리에 누우면 어디서 시작됐는지도 모를 '스무살이면 모든게 끝나겠지. 스무살이 되면 아마 나는 죽을 수 있을거야.'라는 강한 믿음을 가지로 겨우겨우 잠을 청했습니다.

    

그러나 삶은 생각과는 다르더군요. 스무살이 되어도 저는 여전히 숨쉬고 살아있었고, 삶이 버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지만, 그 누구라도 붙잡고 하고 싶은 말이 제 안에는 너무도 많았거든요. 하루하루가 버티고 지나온 날들보다 숨막히고 힘들어졌습니다.

    

'나는 왜 죽지않는거지?', '이만큼이나 버텼는데 왜 하느님은 날 데려가주시지 않는거지?'. 제 마음 속은 원망과 좌절만 가득했습니다. 구렁텅이에 떨어지면 이런 기분일까 싶을 정도로. 지나온 시간보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시간이 더 버겁게 느껴지는 하루하루가 지속되었습니다.

    

그러다 겨우 스무살 초여름이 시작되던 무렵, 엄마에게 어렵게 입을 뗐습니다. 나에게 사실은 이런 일이 있었노라고. 그런데 말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너무 그 상황이 무서워 말을 할 수가 없었다고.

    

나는 스무살이 되면 모든게 끝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어서 더 미안하다고. 그저 미안하다고.

    

이혼하고 위자료 하나 없이 하루에 세가지 일을 하시며 두 딸을 뒷바라지 한 엄마에게, 사랑으로 감싸 안기만 해준 엄마에게 죽어도 하기 싫었던 그 말을 뱉어버렸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마음의 한계치가 다다라 토해내듯 고백했던 것 같습니다.

    

저를 이상한 아이로, 나쁜 아이로 생각하시진 않으실까, 너무 충격을 받아 쓰러지시지는 않을까 우려했던 바와 달리 엄마는 제게 뜻밖에 고맙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고맙다고, 너무 고맙고 미안하다고. 내가 심증은 계속 가지고 있었는데 물증을 잡지 못해 너를 구해주지 못했노라고. 내가 먼저 너에게 물어보고 말할 수 있게 해줬어야하는데 그러지 못해 너무 미안하다고.

    

엄마로써 같은 여자로써 정말 너무 미안하다고. 그리고 이제서라도 얘기해줘서 너무 고맙다고.  한참을 부둥켜안고 울었습니다. 어떤 말도 더이상 나오지 않았기때문에 울음으로 대신했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 저는 스무살이지만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해 정신적 인지상태가 7~8살 수준으로 떨어져 있는 상태였고 엄마는 그런 저를 데리고 저를 낫게 할 수만 있다면 어디든지 가겠다며 모든 일을 둥단(*중단의 오기) 하신채 제 손을 부여잡고 이곳 저곳 안돌아다니신 곳이 없습니다.

    

다행히 천주교 재단의 성폭력 전문 상담소를 만나 상담을 시작하게 되었고, 그 곳에서 다시 정신과 병원을 소개 받아 약도 처방받아 먹으며 횟수로는 3년여를 꼬박 치료에 모든 시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사람들이 무서워 인구가 붐비는 곳에는 가지 못하고 약없이는 잠을 잘 수 없는 상태이지만 예전보다 많이 좋아져 책도 읽고 틈틈히 일기장에 내가 느꼈던 것들이나 병원을 오가며 보았던 것들에 대해 쓰며 조용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서툰 글솜씨로 두분께 편지 아닌 편지를 쓰는 이유는 제가 많이 아플때, 그리고 지금 치료를 하는 중에도 두분의 라디오를 들으며 큰 용기를 얻기 때문입니다.

    

사람사는 이야기, 애환이 넘치는 이야기, 행복이 가득한 이야기를 들으며 나 혼자가 아님을 느끼고 오늘을 버틸 수 있는 힘을 얻기 때문입니다.

    

삶의 무게 앞에 당당한 사람들이라는 저 말이 저에게는 왜이리도 와닿는지요. 삶의 무게 앞에 제가 결코 쓰러지지 않도록 두 분께서 계속 용기를 전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저와 같이 성폭력으로 힘들어하시는 분들께 꼭 하고싶은 말이 있습니다. 너무 무섭고 한 치앞이 보이지 않아 칠흑같겠지만 조금만 용기를 내서 하루라도 빨리 도움을 요청하시길 바랍니다.

    

저는 침묵하고 살아온 시간이 긴 탓에 그만큼 상처가 깊어 치료하는 시간도 길고, 마음을 너무 많이 다친 탓에 사람들과의 교류가 힘이듭니다.

    

저처럼 용기가 없어 주저하지 마시고 부디 목소리를 내서 도움을 요청하시길 바랍니다. 그 상처를 조금이나마 알기에 얼굴도 알지 못하지만 피해를 입으시는 분들의 생각에 늘 마음이 아픕니다.

    

절대 자책하지 마세요. 그건 나의 잘못이 아닙니다. 처음 상담선생님께 저의 잘못이 아니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저 또한 그 사실이 의심스럽고 혹시 내 잘못으로 인해 이런 일이 일어난건 아닐까 고민했고, 여전히 고민중이지만 그리도 여러분은 자책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절대 자신을 미워하지 마세요. 학대하지 마세요.

    

어느덧 스물 넷의 나이가 되었지만 학업이나 일이 아닌 마음치유에 시간을 할애하는 제가 때때로는 한심스럽고 밉기도 하지만 하나의 꿈이 있어 이리도 미운 저를 스스로 보듬어 안아 감싸주고 있습니다.   

    

언젠가 저는 저와 같은 아픔을 지닌 분들께 제가 어떻게 그 시간들을 지나왔는지 말씀해드리고 싶은 작은 꿈이 있습니다. 책으로도 좋고, 직접 얼굴을 보며 조근조근 얘기해드리는 것도 좋습니다.

    

그저 제가 어떻게 그 시간을 지나왔고 지금 어떻게 살고있는지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하루하루 삶의 무게를 견디며 열심히 살고있습니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하루종일 책을 읽으며 마음을 보듬어 주고 있고,

    

요즘에는 조금씩 혼자 외출을 시도해보기도 하고 또래 여자아이들처럼 외모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것을 저만의 작은 성공이라고 해도 되겠는지요.

    

어려운 일인 것을 알고, 두분 모두 바쁘신 분들 인 것을 알지만 나중에 기회가 닿는다면 제게 큰 용기를 주신 두 분을 먼 발치에서나마 만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서툴고 두서없는 글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작은 마음이지만 꼭 전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앞으로도 삶의 무게 앞에 당당한 Aㅇㅇ가 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두 분께.

    

혹시 만약에라도 제 사연이 라디오에 나오게 된다면 제 이름은 익명으로 처리되었으면 합니다. 저의 새로운 이름을, 제 삶을 그 가해자에게 알리고 싶지는 않아서요. 부탁드립니다.




arg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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