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본문 바로가기 회사정보 바로가기

[서봉대의 정가산책]대통령 일기, 문고리 3인방...

#{서봉대} 블로거 | 2014-12-04 09:25 송고 | 2014-12-04 09:54 최종수정
© News1
 

청와대 '문고리 권력 3인방'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신뢰도가 어느정도인지를 새삼 확인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정윤회(전 박근혜의원 비서실장)씨 국정개입 의혹파문과 관련된 박 대통령의 발언때문이었다.
정윤회씨 국정개입 의혹은 그가 청와대의 이재만 총무 · 정호성 제 1부속 · 안봉근 제 2부속 비서관 등을 통해 국정에 개입했다는 내용을 담은 청와대 문건이 최근 언론보도를 통해 공개되면서 불거졌다. 

이에 대해 박 대통령은 의혹 보도 사흘만인 지난 1일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 "그동안 만만회(이재만 총무비서관· 박 대통령 동생 지만씨· 정윤회씨)를 비롯해 근거없는 얘기들이 많았는데 이번에야 말로 반드시 진실을 밝혀내 다시는 이런 말도 안되는 일들이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지적했다.  

또 "문건을 외부로 유출한 것은 어떤 의도인지 모르지만 결코 있을 수없는 국기문란행위"라며 "이런 공직기강 문란도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적폐중 하나"라고 강조, 이번 파문의 초점을 문건의 내용이 아니라 유출 쪽에 맞췄다. 

박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결국 문건의 내용을 '찌라시' 수준으로 규정함으로써 의혹에 휩싸였던 정씨와 문고리 권력 3인방의 손을 들어준 셈이 됐던 것이다.  
하지만 내일신문과 디오피니언의 여론조사결과에선 국정개입 의혹에 대해 "사실일 것"이라는 응답이 과반수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 여론은 문건내용에 대한 진실규명쪽으로 쏠려있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도 이번 의혹을 ' 정윤회 게이트'로 규정한 뒤 특검과 국정 조사  실시를 요구하며  '비선실세 국정농단 진상조사단'을 구성하는 등 공세의 고삐를 죄고 있다.   

 
박범계 새정치민주연합 비선실세국정농단 진상조사단장이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선실세국정농단 진상조사단 1차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박 의원은 "문건 내용는 권력내부의 심각한 투쟁을 예고하는 조짐을 보여주고 있다"며 "이런 내용은 특검의 시발점인 미국에서 전통적으로 사용한 특검에 의해 진상이 규명되어야 할 성격이 가장 높은 사안임이 틀림없다"고 밝혔다. 2014.12.1/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의혹에 따른 파문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란 점을 감안할 경우 박 대통령 발언은 이들에 대해 사실상 '무한 신뢰'를 확인해준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박 대통령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때 가족문제로 논란이 일고 있던 정 씨에 대해 "정윤회 비서는 능력이 있어 도와달라고 했고 실무 도움을 받았다. 법적으로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실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쓸 수도 있는 것이다"고 신뢰감을 표출하기도 했다. 

문고리 3인방의 경우 박 대통령이 초선의원이었을 때부터 정씨에 의해 보좌진으로 합류했으며 지난 대선때 후보 캠프에서 메시지· 연설문 ·일정 등을 각각 맡으며 핵심 실세로 꼽혔다. 이들의 파워는 웬만한 초·재선 의원보다 셌을 정도였고 그래서 '3선급' 보좌진이란 말까지 나돌았다.  

그만큼 박 대통령의 신뢰가 깊다는 걸 뒷받침하는 것으로 비쳐지는 것이다.

앞서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대표였을 때도 주요 보고는 이들 보좌진을 통해 이뤄졌다. 

한나라당 당직자 출신의 한 인사는 "당내에서 박 대표에게 보고하려면 의원실 보좌진을 통해 간접적으로 보고되기 일쑤였다"며 "직접 만나 보고하는 경우는 드물었다"고 전했다.  

결국 박 대통령에겐 국회의원, 그리고 대선후보를 거치는 동안 이들 보좌진이 눈과 귀였고 손과 발이었던 셈이다.  

이들 보좌진은 박 대통령이 5선 국회의원을 지내는 동안 줄곧 곁을 지켜왔다. 단 한명도 교체되지 않았던 것인데, 역대 국회의원들중 이런 예를 들어본 기억이 없다.

이같이 두터운 신임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박근혜 대통령이 정윤회씨 국정개입 의혹 보도 사흘째인 1일 오전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 입장을 밝히고 있다. (청와대) 2014.12.1/뉴스1 © News1 이광호 기자


박 대통령이 정치권에 들어오기전까지의 일기들을 모아 출간했던 책을 통해 짐작해 보는 것도 한 방법일 것 같다. 이 책은 박 대통령이 1998년 4월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당선, 정치권으로 들어온지 6개월후 출간됐된 것이다.

이 책 내용중 "경험을 통해 자기에게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으로 인식된 부하직원에게는 자꾸 일을 맡기고 싶어질 것이다. 이것이 소위 '이미지'라는 것이다"라고 적힌 글이 우선 눈에 띈다. 30대 후반이었던 1989년 7월의 일기들중 한 대목이다. 

또 같은 해 1월엔 "계속해서 인간에 대해 실망하게 되는 일들이 생긴다. 충성을 얘기하고 뭐가 어떻고 말이 많았던 그도 결국 마음에 있는 것은 자리 하나였다. 정말 진실한 사람, 슬기롭고 교양있는 사람, 사심없는 사람은 드문 것인가?"라고 자문하기도 했다. 

이보다 몇해전 일기엔 "똑똑하다, 권세있다, 부자다 하는 말을 듣고 싶어하고 그것을 추구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많으나 진실하다, 예의바르다, 신용있다, 신중하고 믿음직하다는 평가를 가장 중히 여기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는 글도 있었다.

결국 이들 글에는 사람에 대한 가장 중요한 평가가 '신뢰'라는 점, 그러나 이를 중시하는 사람을 찾기 힘들다는 인식이 깔려있는 셈이다. 박 대통령이 신뢰관계에 얼마나 무게를 두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으며, 문고리 3인방에 대한  신뢰는 그만큼 컸던 것이다.

이같은 인식에는 선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측근'에 의해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해야 했던 아픈 기억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이며, 이때문에 박 대통령에게는 '배신에 대한 트라우마' 역시 깊게 자리해 있을 것같다. 

새누리당의 친박 의원들을 만나면 박 대통령에게 한번 찍힐 경우 관계를 회복하기 쉽잖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다.  

신뢰관계를 무엇보다 중시하는 만큼 이에 금이 갈 땐 내쳐진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과거 '친박 좌장'으로 불렸었던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경우 이명박 정부 중반기인 2010년, 정부측 세종시 수정안을 둘러싼 논란과정에서 원안대로 추진해야 한다는 박 대통령에게 맞서 수정안에 찬성함으로써 친박계에서 내쳐졌다. 핵심 친박이었던 A 의원은 박 대통령에게 거슬리는 발언을 했던 이후 찍혔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아직도 관계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일기에는 이런 대목도 있다. "배신하는 사람의 벌은 다른 것보다 자기 마음안에 무너뜨려서는 안되는 성(城)을 스스로 허물어뜨렸다는 점, 그래서 한번 배신을 함으로써 배신을 하지않으려는 저항감이 점점 약해진다는 점, 그럼으로써 세번째 배신이 수월해진다는 바로 그 사실이다"

박 대통령과 문고리 3인방 등 핵심 측근들의 신뢰관계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당장은 이들 측근이 이번 의혹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지가 관건이 될 것이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은 측근들중 몇몇이 인사 개입 혹은 비리 연루 등으로 구속되는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그때문에 국민들에게 고개를 숙여야 했다.

김영삼 정부때에는 아들 현철씨와 청와대의 장학로 전 제 1부속실장· 홍인길 전 총무수석 등이, 김대중 정부때에는 세 아들과 권노갑 전 새천년민주당 고문 등이 구속됐던 것이다.

노무현 정부땐 친형인 노건평씨와 이광재 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안희정 충남지사· 최도술 전 총무비서관 등이, 이명박 정부땐 친형 이상득 전 의원·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김희중 전 제 1부속실장 등이 악순환을 되풀이했다. 

전국적으로 겨울비가 내린 28일 청와대가 짙은 안개에 휩싸여 있다. 이날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라인으로 지목된 정윤회씨가 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을 통해 국정에 개입했다"는 언론 보도와 관련해 청와대는 인용된 보고서는 시중에 떠도는 정보지 내용을 수집해 만든 개인차원의 문건이며 "강력한 법적 조치" 입장을 밝혔다. 2014.11.28/뉴스1 © News1 한재호 기자


이번 파문의 향배가 어느 쪽일지 예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문건 내용이 근거없는 것이라면 정씨나 문고리 권력 3인방은 의혹을 벗게 되겠지만 반대쪽으로 결론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도 있다.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박 대통령은 '그토록 믿었던 측근의 배신'때문에 또 다시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은 일기에 이렇게 써 놨다.

"아예 처음부터 마음을 달리먹고 배신을 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처음에는 진정으로 충성을 맹세했지만 어차피 약한 인간이기에 차츰차츰 권세와 명예와 돈을 따라 마음을 바꾸는 사람도 있다. 그러기에 그 성실성이 훌륭해 믿음이 간다 하더라도 그가 과연 얼마후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사실, 또는 점점 변해가는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서글픔을 금치 못한다..."


이런 일&저런 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