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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항만에서 불어오는 '근로 다이어트' 바람

<뉴스1-고용노동부 공동기획> 근로시간 줄이고 행복 더하기①
"충분한 휴식이 업무집중도 높이고 고수익 창출한다는 깨달음"

(서울=뉴스1) 한종수 기자 | 2014-11-24 16:50 송고 | 2014-11-25 14:32 최종수정
전남 광양 항만 모습. © News1
전남 광양 항만 모습. © News1

전남 광양의 한 항만 하역회사에 다니는 김영욱(41·가명)씨는 요즘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얼마 전에는 가족들과 주말 캠핑도 가고 막내 아이의 공부를 봐줄 시간도 생겼다.

이전에는 주야 2교대를 하면서 매일 야근에 휴일특근까지 하다 보니 내 집이 아니라 꼭 하숙집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3조2교대로 근무방식을 전환한 후 연장근로가 줄고 칼퇴근하는 날이 늘었다.
"새벽에 일 나가서 퇴근해 자고 일어나면 또 일 나가고 하는 시간의 연속이었어요. 집에서 아이들과 놀아줄 시간도 없었죠. 근무방식이 바뀐 후 가정을 되찾은 느낌이에요. 무엇보다 아이들과 아내가 너무 좋아해요."

대주기업 직원 야유회. © News1

김씨가 일하는 광양항만은 부두별로 몇몇 업체가 항만 하역을 맡아 광양포스코가 생산한 제품이나 원자재를 수송하는 곳이다. 그가 몸담고 있는 대주기업㈜도 고철부두에서 포스코의 고철 제품 하역업무를 전담하고 있다.

주로 천정크레인이나 지게차, 굴삭기 등 위험한 장비로 화물 이동을 하다 보니 항상 긴장 속에서 일을 해야한다. 회사 직원 80여명이 2조2교대로 쉴 새 없이 일을 하는 터라 피로도가 높고 사고 가능성도 클 수밖에 없다.

항만에서는 항운노조가 단순 노무직의 공급권을 갖고 있고 대주기업 역시 항운노조로부터 단순 노무자를 공급받아 2조2교대 근로형태를 갖고 있었다. 이런 항만 노역의 특성으로 2조2교대가 관례로 굳어져 온 게 사실이다.

대주기업 근로자들 역시 오랜 기간 2조2교대의 고된 노동을 감내해야 했다. 대부분 항만 근로자들이 오래 전부터 주야 맞교대로 일해 온 터라 대주기업이 독자적으로 그 관행을 개선하기는 어려움이 많았다.

장시간 근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고심하던 대주기업은 2012년 11월 전남 지역 항만업계 처음으로 3조2교대제를 시행했다. 적대적일 수밖에 없었던 노사 양쪽에서 임금 감소에 따른 양보가 이뤄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교대제 비교. © News1
교대제 비교. © News1

◇근로시간 감소에 임금↑·인건비↓…노사 협의로 해결점 찾아

대주기업은 3조2교대제로 개편한 후 근로자들의 노동 시간이 주당 50.9시간으로 전에 비해 13시간을 줄일 수 있게 됐다. 한 개 조가 늘어 신규로 필요한 인력 26명을 채용하면서 일자리 창출에도 한몫을 했다.

하지만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 하락이 큰 문제가 됐다. 근로시간을 줄이고 여가를 더 많이 누리기 보다 보수 하락에 따른 걱정이 더 큰 탓이다. 또 인력을 추가 채용하면서 늘어난 인건비 부담도 상존했다.

직장별 친선탁구대회에서 입상한 현대로지스틱스 직원들. © News1

다행히 회사 경영진이 교대제 전환으로 생산성이 늘어 회사 손익분기점만 넘긴다면 근로자들의 임금 하락분을 보전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있었다. 근로자들은 초기 인건비 부담을 분담하겠다는 양보를 했다.

대주기업 노조 관계자는 "교대제 개편에 따른 임금 하락폭은 19% 정도로 우리 근로자들에겐 생활에 큰 지장을 초래할 정도의 금액이었다"며 "임금 손실분에 대한 노사 모두의 양보라는 대승적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근로자들의 휴식이 보장되자 생산성이 늘어 2013년 11월 기준 연 매출액은 241억원에 달했다. 이는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한 것이고 전년 대비 10% 가량 상승했다. 또 16%에 달하던 이직률도 대폭 낮아져 5%대로 진입했다.

노사발전재단 관계자는 "지난 2012년 7~8월 기간에 우리 재단이 컨설팅을 시작했을 때만 하더라도 노사 모두 걱정이 컸지만 지금은 성공적인 개편으로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생산성도 높아져 근로자와 사업주 모두 의식이 크게 바뀌었다"고 평가했다.

부산신항국제터미널㈜ 직원 야유회. © News1
부산신항국제터미널㈜ 직원 야유회. © News1

◇대한민국 항만의 변화, 교대제 성공 개편에 컨설팅 의뢰 늘어

싱가포르 항만 운영사인 PSA와 한진이 합작해 만든 부산신항국제터미널㈜은 올해 초부터 주야 맞교대에서 3조2교대로 근무방식을 개편한 후 회사 분위기가 달라졌다.

경쟁사에 비해 기술력이 뛰어나지만 열악한 근로조건으로 인해 숙련 근로자의 유출 문제가 회사 성장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 됐으나 근로시간 단축과 추가 고용 등으로 많은 시너지를 내기 시작했다.

부산 신항만 안에서 현대신항만터미널을 위탁운영하는 현대로지스틱스 항만운영팀도 2조2교대를 시행하다가 3조2교대제로 개편하면서 산업재해율과 제품불량률을 대폭 줄일 수 있게 됐다.

이밖에 광양 포스코의 파트너사이면서 조업 지원 업무를 하는 ㈜대진과 포항 포스코의 구내 운송업체인 포트랜스㈜ 등 국내 주요 항만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많은 기업들이 '근로 다이어트' 바람에 가세했다.

한 작은 회사에서 시작한 장시간 근로 개선이 다른 회사로 전이되면서 항만의 활력도 되살아나고 있다. 충분한 휴식이 업무 집중도를 높이고 고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깨달음이 노사 모두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는 것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장시간 근로는 임금 문제를 비롯해 원청-하청 기업 간 문제, 노사 의식 변화 등 여러 난제들이 얽혀 있지만 그냥 덮고 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많은 기업들이 장시간 근로개선 컨설팅 의뢰를 해와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jep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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