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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환경 조성이 인구늘리기? 줄줄 새는 '지방소멸기금'[지방소멸은 없다]

"인구감소 지역 상태 그대로 유지하면서 기금 받는 게 유리"
부산 원도심 포함 5개구 기금 지원…단기성 토건·복지 사업 치중 우려

(부산=뉴스1) 노경민 기자 | 2023-03-14 06:10 송고
편집자주 영영 사라져 없어지는 것. '소멸'이라는 말의 의미가 이토록 무섭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땅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우리 옆의 이웃이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가장 큰 숙제를 힘 모아 풀어나가야할 때입니다. 그 현실과 고민을 함께 생각합니다.
부산 중구 산복도로에서 바라본 영도구 봉래산 일대. /뉴스1 © News1
부산 중구 산복도로에서 바라본 영도구 봉래산 일대. /뉴스1 © News1

가속화하는 지방 인구 유출 대책으로 정부가 내놓은 지방소멸대응기금은 '산소호흡기'가 될 수 있을까. 

14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부산에는 인구감소지역으로 서구, 영도구, 동구 등 3곳, 관심지역으로 중구, 금정구 등 2곳이 지방소멸대응기금을 지원받았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서구 140억원 △영도구 126억 △동구 112억 △중구 35억 △금정구 32억원 순이다.

지방소멸대응기금은 행정안전부가 수도권 인구 쏠림 현상에 따른 지방 소멸 문제를 해결하고자 지방자치단체 기금관리기본법을 개정해 도입한 기금이다. 지난해부터 2031년까지 매년 1조원씩 지원돼 지방 지자체로서는 결코 적은 금액은 아니다.

지자체가 기금 투자 계획서를 정부 기금심의위원회에 제출하면 심사를 거쳐 평가 결과에 따라 기금이 배분된다. 하지만 이 때문에 단기적 성과를 낼 수 있는 건축 사업이나 공약 사업에 치중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구 감소 문제가 심각한 원도심 지자체끼리 손을 맞잡아야 할 상황에 기금 확보로 경쟁을 붙인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제기된다.

◇지방소멸 막는데 웬 '등산객 산행 환경' 조성?

대부분 청년 등 인구 유입보다는 공약 사업이나 토건 사업에 지방소멸대응기금이 편성된 것은 기존 사업에 부족한 예산을 기금으로 메꾼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서구의 경우 '구민 안전 스마트시스템 구축 사업'의 일환으로 '등산객의 안전한 산행 환경 조성을 위한 스마트폴 설치', '범죄 취약지에 CCTV 설치' 같은 지방 소멸과는 동떨어진 사업 등에 약 30억5000만원의 투자 계획이 잡혀 있다.

또 44억5000만원이 투입되는 '일상활력 공동체 회복 사업'에 동네 체육시설 정비나 공동체 화합 행사 운영 등이 포함됐다. 구는 코로나19 장기화로 단절된 주민 소통·화합의 기회를 부여한다는 취지라는 입장이지만, 인구 잡기에 실효성이 있는지는 물음표가 붙는다.

영도구의 경우 주민의 납치·강도 등 범죄를 막기 위해 '스마트시티 통합플랫폼 기반 구축'(12억원 투입)을 통해 CCTV 통합관제센터를 중심으로 112·119와의 연계 강화를 구축하는 사업도 계획돼 있다. 주민 안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업이지만, 지방소멸대응기금이 아닌 안전·복지 예산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도어울림문화공원 원도심 치유문화 거점화' 사업 추진 내용에도 대공연장 등 시설 리모델링에 대부분 예산이 사용된다.

동구는 기금 112억원 전액을 '어울림복합플랫폼 구축 사업'에 사용한다고 밝혔다. 플랫폼에는 육아지원센터와 어린이문화공간, 노인복지관이 들어설 예정이지만, 구는 현재까지도 사업 추진 계획서를 완성하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중구도 2024년까지 번화가 광복로에 분수광장을 설치한다는 기금 사용 계획을 내놨지만, 정주 환경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원도심 기초의회 한 의원은 "사용처 목록을 보더라도 '청년'이 들어간 사업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기금 취지가 기존에서 많이 벗어난 것"이라며 "지방 소멸 방지의 핵심이 청년 인구 유입 및 유출 방지인 만큼, 청년 인구를 잡는 데 초점을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10년도 짧아" 중장기 대책 어려워…주민 의견 수렴도 부족

기금 지원이 2031년까지 예정돼 있어 10년 이상의 계획을 세우기는 어렵다. 인구 문제는 긴 호흡을 가지고 장기적인 관점으로 접근해야 하는데, 제도 한시성으로 연속성을 떨어뜨리는 점은 '지방 살리기' 활로를 모색하는 데 장애물이 될 수 있다.

류영아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의 '지방소멸대응기금의 도입 현황 및 향후 발전방안' 논문에 따르면 익명으로 실시한 기초지자체 공무원 설문조사에서 제도의 한시성에 따른 중장기 계획 수립 어려움 및 단기 성과 분석에 대한 비판이 컸다.

한 지자체 공무원은 "기금 사업을 통해 지역 인구가 늘어나면 인구감소 지역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더이상 받을 수 없다"며 "10년 후 기금 지원이 사라지니 그동안 인구감소 지역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기금을 받는 게 유리하다"고 말했다.

부산에서 기금을 받는 일부 지자체 관계자들도 지난해부터 기금 사업이 급하게 시행돼 세부적인 사용처 계획을 세우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는 불만도 나온다. 지역민 외부 유출을 막는데 목표를 둔 기금인데도 그동안 주민·전문가들과의 소통도 부족했다.

이제라도 지방소멸대응기금 활용을 실효성 있게 하려면 기금 편성 이후의 과정도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인구 소멸 지자체 간 좋은 정책은 서로 벤치마킹할 수 있도록 우수사례 경진대회를 확대하거나 우수 지자체에는 기금이 더이상 지원되지 않을 경우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도 고려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양미숙 부산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지방소멸대응기금 대부분이 토건 개발 사업과 단발성 사업에 쓰이는 점은 개선해야 할 점"이라며 "부산이 전반적으로 인구 소멸 지역인데 지역별로 기금을 쪼개면 시너지 있게 사용되지 못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기금을 신청하기 전에 먼저 지역 주민, 전문가들과 의견을 모으는 과정이 필요하다. 대부분 기초단체장이나 공무원들이 논의 없이 기금을 신청하다 보니 상관없는 사업에 쓰이는 것"이라며 "10조원이 지역으로선 큰 예산인 만큼 지방의 기초 체질을 개선하고 시스템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장기적인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blackstamp@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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